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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명석·윤시내 부부의 시베리아~몽골 횡단 기차여행2] 이르쿠츠크와 바이칼 호수

[워싱턴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7/07/28 07:33

이광수의 ‘유정’과 호수 속의 낙원, 올혼 섬
‘세상의 낙원’ 바이칼 호수, 깨끗하고 잔잔
이르쿠츠크, 36시간 시베리아 횡단 휴식지

올혼 섬에서 보는 바이칼 호수.

올혼 섬에서 보는 바이칼 호수.

140년 된 여인숙.

140년 된 여인숙.

여행 중에서 가장 편안하고 자유롭고 낭만적인 여행을 뽑으라면 나는 단연 기차여행을 첫째로 뽑는다. 이 바쁜 세상에 비행기로 날아가면 단 서너 시간 걸릴 곳을 3일씩 걸려 기차로 가는 것이 무슨 어리석은 짓이냐고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시간과 경비로 따지면 그 말은 맞다. 비행기가 가장 빠르고 경제적이다. 그러나 여행을 어디 시간과 돈이 좌우하게 하는가. 은퇴해서 있는 것이라곤 돈 안 되는 시간과 바람뿐인데.

시베리아-몽골 기차여행의 첫 출발지 울란바트로에서 저녁 8시35분 출발하는 기차에 올라탄다. 이틀 밤을 기차에서 자야 하는데 1등석은 없고 2등석은 4인용이라 침대가 좌우 이층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 고심 끝에 거금을 들여 침대 넷 있는 칸을(110달러x4=440달러) 몽땅 사기로 했다. 하루 저녁쯤이야 생면부지 모르는 사람과 한 방을 같이 쓴다 하여도 이틀 저녁을 어찌 그럴 수 있겠는가.

기차에 타고 보니 역시 잘한 결정이라 싶다. 의자에 마주 앉으면 무릎이 거의 맞붙을 만큼 협소한 방인데, 할 말도 없는 사람 얼굴 빤히 바라보고 앉아있는 고역을 어떻게 치르며, 잠자리에 들기 전 옷은 어떻게 갈아입고, 화장실에 가려면 누구든지 이층 침대에서 사다리 짚고 내려와야 하는데 잠귀가 유난히 밝은 남편이 그 시끄러움을 어찌 견딜 것인가.

짐을 선반에 올려놓고, 의자를 펴서 침대를 만들고, 세탁해서 유리 종이에 싸서 준비해놓은 눈같이 희고 반들반들한 시트를 꺼내 잠자리를 만든 뒤, 책과 화투를 꺼내 탁자에 놓는 것으로 준비는 끝난다. 이 순간부터 목적지인 이르쿠츠크에 도착할 때까지 내가 할 일은 전혀 없다. 길이 막혀도, 날씨가 궂어도, 세계 어딘가에서 테러가 일어나도 나는 모른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는데 그런 일들을 안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내게는 이제부터 오직 기차가 하는 대로 몸을 맡길 일만 남아있다.

그리하여 울란바트로에서 저녁에 출발한 기차가 1113km(약 700마일)를 가는데 장장 36시간이 걸린다. 가는 시간보다는 이름도 알 수 없는 정거장에서 안내방송 한마디 없이 6시간씩, 3시간씩, 시간이 정지한 듯 꼼짝없이 버티고 서있다. 위험은 아랑곳없이 철로를 여기저기서 마구 건너는 사람들을 보며, 러시아 접경 도시에서 여권 조사하는 관원이 비인간적인 대우를 했다고 분개하는 오스트레일리아 여인의 불만에 귀 기울이며, '때 되면 가겠지' 이르쿠츠크에서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만날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언제든지 가기만 하면 되는 일이니까 하고 마음 편하게 먹는다.

어느새 이틀 밤이 지나고 이르쿠츠크에 도착한다. 우리 숙소는 ‘마마호스텔(Mamahostel)’. 나이 60을 바라보는 러시아 여인이 140년 된 집에서 운영하는 허름한 여인숙이다(하룻밤 1500루블, 약 30달러). 아침으로 밀전병, 메밀죽, 커피 등을(500루블), 저녁으로 맛있는 수프(보-쉬)와 생선과 감자와 채소(1000루블) 등을 판다.

특히 메밀죽은 여기서 처음 먹어본 건데 푹 삶아서 부드럽고 구수하며, 보-쉬국은 기름기가 없고 약간 털털한 맛이 우리 우거짓국을 연상시켜 주어서 둘 다 러시아의 대표 음식으로 우리 기억에 남을 것이다.

이르쿠츠크는 시베리아 횡단 기차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즐겨 쉬어가는 곳인데, 그 이유는 근처에 바이칼 호수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곳에서 3박4일 일정을 잡은 것도 그 때문이다. 이광수 작 ‘유정’의 주인공 최석과 남정임 두 사람이 사회와 주위 사람들의 오해와 지탄을 받고 홀연히 고국을 떠나 얼어붙은 형극의 땅 시베리아로 간 뒤 종적을 감춘 곳이 바로 바이칼 호수이다. 1950년대에 사춘기를 겪은 내게 바이칼 호수는 슬프고 아름답고 안타까운 사랑의 종착지로서, 황막하고 처절한 겨울 경치와 더불어 신비로운 베일에 가려진 호기심의 대상이다.

세계 담수의 20%를 담고 있다는 바이칼 호수의 백미는 호수 안에 있는 올혼(Olkhon) 섬이라고 여행안내서마다 방문을 권장한다. 이르쿠츠크에서 7시간 걸리는 곳이라 당일치기는 어렵다 해서 하루 잘 수 있도록 집을 떠나기 전 예약을 해두었던 터라 다음 날 아침, 안내원 맥스가 차를 갖고 왔다. 맥스는 자그마한 키에 다부진 체격의 36세 러시아인이다. 아직 미혼이고 나타샤라는 여자 친구가 있으며, 혼자 된 아버지는 멀리 사는데 사람이 살다 죽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라 걱정하지 않는다고 무심히 말한다. 일 년에 반, 여름과 겨울 관광철에 여행안내원으로 일하고, 나머지 반은 여행을 다니는데 차는 집에 두고 무임승차(hitch hiking)를 해서 간다고 한다. 위험하지 않으냐고 물으니 러시아인은 자리가 있으면 기꺼이 여행객을 태워주고, 자기도 길 가다가 엄지손가락 신호하는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태워준다고.

맥스는 바이칼 호수를 세상의 낙원이라고 말한다. 물은 깨끗해서 호수의 물을 그냥 마셔도 배탈 안나고, 공기 맑고, 나무는 울창하고, 고요하고 평화로운 자연. 천국이 어디 따로 있겠는가 하고 묻는다. 태어나고 자라서 성숙한 사회인으로 사는 고향을 진심으로 속속들이 사랑하는 사람의 말은 내 마음 속에 잔잔한 감동을 불러 일으킨다. 문득 소나무 숲 아래에 진분홍 꽃수풀이 펼쳐진다. 시베리아 진달래다. 꽃의 크기가 좀 작은 반면 색깔은 진분홍으로 더 짙다. 올혼 섬이 천국임을 다시 한번 인식시켜주려는듯 진달래 꽃숲은 한동안 계속된다.

욕심 같아서는 올혼섬이 더 이상 관광객들을 위해 호텔을 짓고 길을 닦고 식당을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7시간을 투자하여 오는 사람들에게 본래의 모습 그대로의 자연을 이익으로 배당할 수는 없는 일일까. 호수라고 말은 들었지만 믿기지 않을만큼 넓고 또 넓은 물은 깨끗하고 잔잔하며 맑은 햇살 속에서 짙푸른 색과 은빛으로 반짝거린다. 바람이 솔잎 사이를 빠져나가며 솔향기를 보내주고, 물결은 모래사장을 잠재우려는듯 살살 토닥거리며 그러면서도 바위를 부셔서 모래로 만들고 있다. 십년을 단위로 치는 우리 삶과는 비교조차되지 않는 시간이 여기에 있다.

참, 올혼섬에서는그곳 특산물 생선, 오물(Omul)을 꼭 먹어보라고 했는데, 오물을 파는 곳도 없고 섬 부근에는 어선도 없어 맥스에게 물어보니, 너무 많이 잡아서 물고기 씨가 마를까봐 정부에서 잡는 것을 금했다고 한다. 그러고보니 전날 바이칼 호수의 항구, 리스트비양카(Listvyanka)에 갔다가 거기서 오물을 맛보길 정말 잘했다. 연기가 솔솔 올라오는 화덕 근처에 관광객들이 몰려 있어서 가 보니 생선을 훈제하고 있었다. 혹시 오물인가싶어, “오물?” 하고 물으니 그렇다고 머리를 끄덕인다. 한마리에 100루블. 두 마리는 많겠고 한 마리만 사서 따끈한 것을 들고 식기 전에 먹으려고 근처 풀밭에 앉아 둘이 나눠 먹었다. 아주 잘 훈제가 되어서 살 한점 묻지 않고 가시가 발라진다. 간간하고 순한 맛이다.

이르쿠츠크에 돌아오니 밤 열시가 넘었는데도 해는 아직 높히 떠있고 시민들은 강변을 거닐며 백야를 즐긴다. 다음 날 새벽 6시에 일어나 모스코바 가는 기차를 타려고 기차 정거장에 갔는데,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고, 엉토당토 않게 황당한 실수를 내가 저지른 것을 알고 당황하고 부끄럽고 화가 치밀어서 아무나 붙잡고 한바탕 싸움이라도 하고 싶었다. 도대체 어떤 실수였기에? (계속)

▷문의: seenaeyoo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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