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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광장] 동굴 밖으로 나온 '야생 멧돼지'

월드컵 열기가 한창일 때 한 축구팀의 이야기가 연일 뉴스를 탔다. 이 팀은 월드컵 개최국 러시아 대표팀도 아니었고, 축구 잘하기로 소문났음에도 조별 예선을 통과하지 못한 독일 대표팀도 아니었다. 이 팀은 태국 치앙라이 '무빠 유소년 축구단'이었다.

이 축구단에 속한 11~16세 선수 12명과 코치 1명이 훈련을 마치고 관광을 위해 탐루엉 동굴에 들어갔다가 갑자기 쏟아진 비로 고립됐다. 이들은 불어난 물을 피해 동굴 안쪽으로 들어갔고, 입구에서 3마일 정도 떨어진 곳에서 실종된 지 열흘 만에 발견되었고, 많은 이의 노력으로 발견된 지 일주일 만에 전원 무사히 구조되었다.

오후 훈련을 마치고 아무런 준비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동굴에 들어갔던 이들은 어두운 동굴 속에서 천정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을 마셔가며 버텨냈다. 이들은 서로를 부둥켜안고 배고픔과 추위, 어둠과 두려움을 이겨냈다. 이들의 무사 귀환은 소년들의 가족들만이 아니라 뉴스를 접하는 모든 이들에게 큰 기쁨을 주었다.

소년들의 이야기를 듣는데 이민자의 인생이 떠올랐다. 반바지 차림으로 슬리퍼 신고 잠시 산책 나왔는데, 그 산책길이 끝도 모르고 달려야 하는 마라톤이 된 것같이 기약 없이 달리며 사는 모습이 바로 우리가 사는 이민자의 삶이기 때문이다. 이민 올 때 이렇게 오래 미국에 살 줄 알고 온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잠깐 들렀다 가야지', '공부 마치면 얼른 돌아가야지', '살만한 곳인지 한 번 알아볼까?' '아이들만 키우면 돌아가야지' 뭐 이런 마음들로 시작했는데 어느새 이 만큼까지 오지 않았는가. 가벼운 발걸음으로 떠난 산책길이 무거운 다리를 질질 끌고서라도 달려야 하는 마라톤이 된 지 오래다. 그 끝이라도 알 수 있다면 그 자체가 희망이 될 수 있을 텐데 끝도 없이 달려야 하기에 마음 졸이며 사는 것이 이민자의 삶 아니겠는가.

불어난 물을 피해 한 걸음 한 걸음 동굴 안쪽으로 자리를 옮겨야 했던 태국의 어린 축구선수들이 열흘 이상을 견딜 수 있었던 힘은 바로 친구들이었다. 서로를 의지할 수 있는 친구들이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어둠도 배고픔도 추위도 견딜 수 있었을 것이다.

어차피 준비 없이 떠난 인생길이라면 친구라도 있어야 할 것 아닌가. '기쁨을 나눴더니 시기가 되고, 슬픔을 나눴더니 약점이 되고, 배려했더니 권리인 줄 알고, 양보했더니 바보인 줄 알더라'는 말이 나돌 만큼 세상이 각박해졌다 하더라도 여전히 주위에는 기쁨을 나눌 수 있는 친구들, 슬픔을 나눌 수 있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태국의 유소년 축구단 이름이 '무빠'라고 한다. '야생 멧돼지'라는 뜻이다. '야생 멧돼지'들이 서로 의지하며 동굴 밖으로 나온 것처럼 우리도 서로를 의지하며 한 발자국씩이라도 동굴 밖으로 나가자. 스스로 만든 어둠의 동굴, 사람에 치이며 점점 깊이 들어선 동굴에서 한발 씩만 앞으로 나아가자. 가다 보면 밝은 세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이창민 / 목사·LA연합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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