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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로 배우는 마르띤의 스패니시 생활회화<294>멕시코의 독립3

[LA중앙일보] 발행 2018/06/14 스포츠 23면 기사입력 2018/06/13 17:11

이달고 신부와 모렐로스 신부의 봉기 실패 10년 후인 1821년 반란군 진압사령관인 아구스틴 데 이투르비데(Agustin de Iturbide)가 왕실군 2500명을 이끌고 모렐로스의 잔당과 대치 중이던 12월 '이괄라 계획(Iguala 온건한 형태의 독립 선언으로 게릴라들과 끄리오요들의 지지를 동시에 끌어낸 선언)'을 발표하고 총뿌리를 꺼꾸로 든 다음 한편으로는 왕실군과 전투를 벌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스페인 식민당국과 협상으로 정권을 이양받게 된다.

당시 스페인 식민정부는 현지 주둔군의 숫자가 미미한데다가 본국의 증원군을 기대할 수 없어서 거의 전투를 포기하고 정권을 이양했다.

식민지를 통치하는데 꼭 많은 병력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수억의 인도를 통치하던 본국 파견 영국인들은 1000명에 불과했고 인도네시아를 통치한 네델란드인은 겨우 200명 정도였으며 조선을 식민지로 병합한 일본이 조선에 주둔시킨 병력도 2만이 채 안 되었다. 당시 조선의 인구는 800만이 넘었을 것이다. 1822년 정권을 잡은 이투르비데는 뒷골목 여기 저기 돈 봉투를 뿌려 장삼이사들로 하여금 위대한 이투르비데가 황제에 즉위하기를 원한다고 소리지르고 다니게 만든 뒤 국민의 염원(?)에 따라 황제에 즉위하나 1년도 못 채우고 반대파에게 잡혀 처형된다.

이투르비데의 집권 기간 동안 재미 있는 사건이 하나 있었다. 이투르비데는 자기 나라 아랫 동네인 지금의 과테말라 온두라스 엘살바도르니카라과 코스타 리카등을 멕시코와 통합하도록 강요했다. 힘 없고 빽 없는 소국들은 전혀 마음이 내키지 않은 채 별 수 없이 통합에 따랐으나 이투르비데가 실각하자마자 멕시코로부터 떨어져 나와 중앙아메리카연방이라는 독립국을 세웠다. 하지만 통합 18년 만인 1840년 지금의 중미 국가들로 나뉜 것이다.

▶문의:(213) 381-0041 www.martinspanishcollege@gmail.com

▶웹사이트:www.martinspanishcollege.com

백지원(언어학자/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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