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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로 배우는 마르띤의 스패니시 생활회화<297>알라모 전투와 텍사스의 상실

[LA중앙일보] 발행 2018/06/16 경제 10면 기사입력 2018/06/15 18:25

멕시코에게 통한의 땅인 텍사스는 19세기 초반부터 미국인이 이주하여 살고 있었다. 당시 텍사스는 멕시코의 코아우일라(Coauila) 주의 소속 영토였다.

미국은 벌써부터 그 땅을 탐을 내어 잭슨과 애덤스 대통령 시절부터 매입을 제의했으나 멕시코로부터 번번히 거절당했다. 1830년이 되자 목화 재배가 적당한 이 비옥한 평원에 2만명 이상의 미국인이 거주하게 되었다. 흑인 노예 수천명도 그들을 따라와서, 미국인은 인구면에서 멕시코인을 앞지르게 됐다. 미국인들은 목화 농사를 지으려고 텍사스에 왔고 목화 농사를 지으려면 흑인 노예의 노동력이 꼭 필요했다. 그런데 당시 멕시코는 1824년부터 노예제도를 금하고 있었고 미국은 노예제 폐지 선언 전이었다.

노예 소유가 법적으로 문제가 되자, 텍사스 거주 미국인들은 아예 멕시코에서 탈퇴하여 딴 살림을 차리기로 작정하고 1835년 독립을 선언했다. 론스타 공화국이 탄생한 것이다. 그러자 멕시코는 산타 안나를 지휘관으로 6000명의 병력을 파견했다.

산타 안나는 3000명의 병력을 이끌고 트라비스 대령이 겨우 187명의 병력을 이끌고 방어 중인 산안토니오의 알라모라는 이름의 한 선교본부를 공격했다. 소수의 미군 병력은 무려 10일 간을 버티며 저항했으나 전멸했다.

알라모 함락 직후, 텍사스군 사령관인 휴스턴 장군은 잔여 병력을 이끌고 승리로 방심한 멕시코군을 기습했다. "알라모를 기억하라!"라는 구호를 외치며 달려드는 미군에 의하여 전투는 단 20분만에 종료됐다. 수백명의 멕시코군이 전사하고, 수백명이 포로로 잡히는 동안, 텍사스군의 사망자는 단 9명뿐이었다. 산타 안나는 우세한 병력을 가지고도 대패한 데다 자신 역시 포로가 되어 미국으로 이송되었으며, 텍사스의 독립을 약속하고야 풀려나 멕시코로 돌아왔다.

▶문의: (213) 381-0041 www.martinspanishcollege@gmail.com

▶웹사이트:www.martinspanishcollege.com

백지원(언어학자/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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