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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교차로] 내 심장을 뛰게 하라

새 날이 밝았다. 시간의 화살은 어제를 찢고 미지의 시간 속으로 날아간다. 'Happy New Year'라는 인사를 끝맺기도 전에 어제는 과거에 묻힌다. 화살은 시위를 떠났다. 화살은 앞으로만 날아간다. 활시위는 활의 양단에 친 활줄이다. 활을 목표물에 맞추려면 단단한 활줄과 좋은 화살은 필수다. 활쏘기를 잘하려면 올바른 자세, 맑은 정신, 뛰어난 체력, 목표를 놓치지 않는 순발력과 판단력을 고루 갖추어야 한다. 부여와 고구려에서는 활을 잘 쏘는 명사수를 주몽(朱蒙)이라 불렀다. 요즘으로 치면 선망의 대상, 스타인 셈이다. 세상살이 공짜로 되는 것은 없다. 죽을 만큼 연습하고 죽을 만큼 노력해야 안 죽고 살아 남는다.

장편소설을 쓰기로 했다. 하루 아침에 결심한 것은 아니다. 오래오래 하고 싶었던 밀애의 환상을 독화살에 담아 세상 속에 날려보내고 싶었다. 열정과 낭패를 오간다 해도 바람이 전하는 말들을 한톨도 남기지 않고 하얀 명주 한필에 적고 싶었다. 고향에 남은 자들은 당당했다. 유명 작가의 소설이나 연속극에서 이민 온 자들에 대한 피상적이고 악의에 찬 등장과 조롱이 빈번하게 사실처럼 부각됐다. 나는 결코 이민자들의 희로애락을 담은 신파조의 이민소설을 쓰지 않을 것이다. 고향을 등지고 세계속에 뿌리 내린 자들의 사랑과 배신, 아픔과 절망, 세계화 속에서 상충되는 민족사와 그 속에서 고뇌하는 자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으려 한다.

내 첫 번째 자전소설 '찔레꽃' 두 권을 출간 했을 때도 친분이 깊던 문단 선배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나는 자신들의 그릇에 담긴 밥을 넘보는 토종개도 아닌 서양개에 불과 했다. 그래도 주눅 들지 않고 '여왕이 아니면 집시처럼' 자전 에세이를 출간했다. 모두가 아니라고 고개 저을 때, 스팩이 부족하다고 조롱할 때, 너무 늦었다며 위로와 체념을 부추길 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며 단념하라고 윽박지를 때, 나는 살아 퍼득이는 내 심장의 목소리를 듣는다. 살아있는 지 알고 싶으면 심장에 손을 대 보라. 죽은 자의 심장은 뛰지 않는다. 그대 가슴은 지금 무엇을 향해 용솟음치며 불타오르고 있는가.

뒤돌아 갈 수 없으면 앞으로 간다. 뒤로 가는 길이 없어지면 전진만이 살길이다. 은사님 선배 지인들에게 소설쓰기 시작을 알렸다. 소문 내면 책임이 따른다.



'파부침주(破釜沈舟)'는 '밥 지을 솥을 깨뜨리고 돌아갈 때 타고 갈 배를 침몰시킨다'는 뜻이다. 사마천의 사기 항우본기(項羽本紀)에 항우가 장하를 건너자 타고 온 배를 침몰시키고 솥 마저 깨트린다. 갈 길이 막히고 먹을 것이 없는 병사들은 결사항전으로 싸워 진나라 군대를 궤멸 시키고 승리를 이룬다.

'공중을 향해 화살 하나를 쏘았으나,/ 땅에 떨어졌네, 내가 모르는 곳에./ 너무 빠르게 날아가는 화살을/ 시선은 따라갈 수 없었네 (중략) 오랜, 오랜 세월이 흐른 후, 한 참나무에서/ 화살을 찾았네, 부러지지 않은 채로./ 그리고 노래도, 처음부터 끝까지' -헨리 워즈워드 롱펠로의 '화살과 노래' 중에서

루브르박물관에 소장된 인도 이슬람 풍 접시에는 화살이 목을 관통한 청년을 향해 여인이 다시 활시위를 당기고 있다. 화살을 맞은 청년도 여인도 고통스러워 하지 않는다. 화살이 날아가는 곳, 그 곳이 고통과 슬픔의 길이라 해도 심장이 뛰는 곳이라면 죽지 않고 살리라. 좋은 것, 궂은 일, 아름다운 것과 고통 받는 일, 사랑으로 죽고사는 모든 것들의 기쁨과 절망 위해 내 심장을 뛰게 하라.


이기희 / 윈드화랑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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