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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새해의 문

연말과 새해가 가까워 오면 괜스레 마음이 바빠지고 종종 걸음을 치게 된다. 며칠 남지 않는 달력의 끝자락을 세다 보면 새해의 싱그러운 문이 보인다. 새해의 문을 보면 시간이 너무 흘러가 버렸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어느 화가의 그림처럼 정말이지 나뭇가지 위에서도, 바다에서도 시간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는 것 같다. 무언가는 버려야 하고 무언가는 지워야 하고 또 무언가는 다시 다잡아야 된다는 생각으로 서랍도 정돈하고 책장도 정리해 본다. 시간을 잡아 옷장 속에도 신발장 속에도 가두어 보지만 결국은 또 흘러가고 말 것이다.

어린 시절에는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원했다. 그러나 이제는 천천히 때로는 그냥 멎었으면 하고 바라는 나이가 됐다. 나이가 들면 얼마나 많은 것들이 사라지고 마는가? 젊은 날에는 젊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사랑하고, 고뇌하고, 때로는 상처받고, 위로하며 멋있게 살았다. 이제는 맑은 눈빛도 순수했던 마음도 모두 낡아지고 편안함과 게으름에 익숙해져 한없이 초라해진 모습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세밑에서 새해에 이르면 시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시간을 우리 마음대로 잡아둘 수는 없지만 시계로 측정되는 정확한 시간, 누구에게나 공평한 물리적 시간은 쓰는 사람에 따라 결과물을 다르게 가져올 수 있다고 한다. 운동하러 가서 느끼는 일 중 하나는 똑같은 시간에 운동을 시작했는데도 옆 사람은 10km를 달리고 나는 겨우 5km를 달리고 있다. 결국 그는 부지런한 속도로, 나는 게으른 속도로 시간을 썼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 물리적인 계측에 의하지 않고 주관적으로 체험하고 파악하는 심리적 시간이 있다. 심리적 시간이란 때로는 느리게, 때로는 빨리 흐르고 무자아의 상태에선 멈추기도 하는 시간이다. 한 여름 뜨거운 땡볕에서 땀 흘리며 일하는 시간과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시간은 동일한 물리적 시간이라 하더라도 우리가 느끼는 심리적인 시간은 다르다. 자유롭지 못한 교도소 안과 밖의 시간 역시 물리적으로는 동일하지만 심리적으로 다를 것이다. 그 이유는 절실함.간절함 때문이라고 한다.



철학가 장 마리 귀요(Jean-Marie Guyau)는 시간을 인식하는 방식의 변화를 통해 시간을 길게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최대한 낯선 환경을 찾고 낯선 경험을 하는 것도 시간의 속도를 늦추는 좋은 방법이다. 현재의 상황에 익숙해져 무감각화 메커니즘이 작동하려 할 때마다 새로운 환경과 경험을 찾아 나서는 것이다. 시간의 주인이 되기 위해 "인식하는 시간의 양을 늘리고 싶다면,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시간을 수천 가지 새로운 경험으로 채워나가라. 흥미진진한 여행을 시작하고 자신을 둘러싼 세상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어 스스로를 새로이 하라"고 권한다.

한 해를 맞고 또 한 살 나이를 먹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묵은 달력을 붙잡고 있을 수만은 없다. 마지막 꼬리를 감추는 이 해에게 담담히 인사를 건네고 새로 오는 새해를 맞이하러 문을 열어야 할 때다. 제대로 사랑하지도 못했고 대단한 일도 이루지 못한 쓸쓸함이 어둠처럼 내려앉는 2018의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친구에게 이웃에게 또 자신에게 열어야 할 마음의 문도 많다. "나이가 들어도 매력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말을 위로 삼아본다. 젊은 날, 나를 당당하게 만들었던 나만의 매력을 다시 만들어가는 새해가 되기를 바란다.


임혜숙/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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