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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면도 촌놈의 정 넘치는 숫자 인생…문주한 공인회계사

지난해 12월. 트럼프 대통령이 세제개혁법안에 서명한 다음날 바뀐 사항을 정리해 고객들에게 e메일을 발송했다. 바뀐 세제개혁 중 짚고 넘어가야 할 항목을 조목조목 설명하는 꼼꼼한 서비스를 제공했다. 다른 회계사들도 이럴까.

한국에서 그 유명한 삼일회계법인에서 10년을 근무하고 뉴욕으로 옮긴 문주한(영어이름 Raymond J. Moon) 회계사. 뉴욕 경력 20년, 총 30년을 숫자와 함께한 인생이다. 첫 인상은 중저음이지만 맑은 목소리 톤과 거침없이 토해내는 세무.회계에 관한 얘기는 이해를 넘어 시원시원하기까지 하다. 거침없이 달려 온듯한 그의 이야기, 숫자만 놓고 보면 건조할 것 같은 인생에 사람의 향기가 배어 있다.

수입 5만불 소상인 법인세
15%서 21%로 오히려 증가


1. 세무·회계



1986년 이후 31년 만에 최대규모의 세제개혁안이 통과된 후 트럼프 대통령은 1조5000억 달러 규모의 세금 감면으로 미국 경제를 일으킬 것이라고 떠들어댔다. 법인세.개인소득세율 인하 등에 초점을 맞춘 기사들이 마구 쏟아졌다. 그럼 한인 직장인이나 소상인들은 어떤 변화를 체감할까. 문주한 회계사는 중요한 변화를 원포인트로 맞춤식 강의를 진행했다.

-법인세가 인하됐다.

"가장 중요한 대상은 스몰 비즈니스를 하는 한인들이다. 언론은 법인세율 인하라고 보도했지만 지난해 5만 달러까지 15% 그리고 수입에 따라 25%, 34%였는데 트럼프는 모든 걸 21%로 단일화시켰다. 5만 달러 이하 소득자에겐 오히려 21%로 인상된 것. 내 고객들 중 100만 달러씩 수입이 있는 곳이 드물다. 오히려 6%P가 올라 기존 세율 대비 40%가 올랐다. 결국, 한인 소상인에게 어려운 문제라 안타깝다."

비근한 예를 들자면 버라이존 같은 대기업의 본사는 좋지만 가맹점은 더 힘들어졌다.

-절세는 어떻게 하나.

"담당 회계사와 상담해 전략을 세워야 한다. 개인(sole proprietorship), LLC, S Corp, C Corp 등 법인세와 개인소득세의 관계를 잘 따져야 한다. 지금까지는 C Corp로 하는 게 유리했다면 이제 게임의 룰이 바뀌었다. 필요하면 새로운 걸로 갈아타야 한다. 탈세만 생각하지 말고 법의 테두리 안에서 세금을 줄일 수 있어야 한다. 이건 중요한 이슈다."

-인적공제 폐지는.

"2018년부터 폐지된다. 인적공제(Personal Exemption)는 한 명당 4050달러씩 4명이면 1만6200달러를 공제해줬다. 대신에 자녀세액공제는 한 명당 최고 1000달러에서 최고 2000달러(소득한도 40만 달러)로 올랐다. 두 가지는 조건이 약간 다르다. 어떤 사람은 인적공제를 없애고 자녀세액공제가 더블로 되면서 이득을 보는 케이스가 있고 반대의 경우도 있다."

-주·시정부 세금 공제.

"소득.재산세 전액공제 해주던 걸 합쳐서 1만 달러까지만 공제된다. 비싼 집이 있는 사람들이나 수입이 많은 사람들에겐 불리해졌다."

-오바마케어도 변하는데.

"2018년까지 의무이므로 미가입 시 벌금이 있다. 하지만 2019년부터 가입은 의무지만 벌금은 없다. 아직 오바마케어는 폐지되지 않았다. 돈이 없어 보험을 못 드는데 벌금을 내라니, 취지는 이해가 되지만 좀 그렇다."

-직원 복리후생비 공제.

"예를 들어 네일숍 업주가 뉴욕에서 커네티컷으로 직원을 픽업해 가면 교통비.주차비 지원과 회사 밴 출퇴근은 50%까지 공제됐으나 올해부터는 불가능하다."

문주한 회계사는 이 정도가 일반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변화라고 설명했다. 그가 현장에서 보는 한인 경제는 어떨까. 문 회계사는 지난달 28일 플러싱에서 무료 세금 세미나를 열고 4일 오후 2시부터 뉴저지 포트리 더블트리호텔에서 바뀐 세법 등 2차 세미나를 준비 중 전망을 전했다.

"주류사회의 낙수효과 측면도 있어 올해 경제는 낙관적으로 본다. 그러나 한인 업주는 피부로 느끼질 못한다, 지금 이 시각 많은 한인 업소들이 폐업을 하고 있다. 주머니 사정이 안 좋으니 소비도 줄었다. 한인 비즈니스는 대부분 간단하다. 신발가게, 문방구 등 소상인인데 대기업이 들어오면서 많이 줄었다. 하지만 곧 좋아질 거라 본다."

문 회계사는 지나가는 이야기 하나를 끄집어냈다.

"매년 사정이 어려운 고객 10명을 선정해 500달러씩 도움을 준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대상이 너무 많아졌다. 카드 돌려 막는 소상인들이 많아지고 하루하루 버티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그래도 어려우신 분들에게 '1년만 참으세요. 분명히 좋아질 겁니다'라고 격려의 말을 건넨다."

한인사회를 생각하는 그의 마음 씀씀이가 따뜻했다.

현실은 비즈니스 종류도 줄고, 1세는 은퇴하고 2세는 대개 직장, 의사.변호사 등 전문직으로 진출한다. 게다가 새로운 이민자 유입도 줄어든다. 오히려 한국으로 유턴하는 경우도 많아 시장 규모도 줄어들고 있다.

한 문턱 넘으면 산이 있더라
"회계사는 내 천직, 아주 좋다"


2. 숫자는 내 인생

문주한 회계사는 한국에서의 경력을 가진 희귀한 경우다. 1995년 뉴욕의 PWC에 연수 왔다가 1997년에 한국에 IMF사태로 뉴욕에 눌러앉았다.

그가 회계사가 된 과정도 남다르다. 덕수상고 졸업 후 국민은행에 입사했다. 선생님 말씀대로 은행에 취직하면 만사형통일 줄 알았다. 하지만 이게 뭔가. 대학 나온 직원들의 조수 역할에 그쳤다. 이게 아니다 싶은 그는 어렵게 들어간 은행을 1983년 8월에 그만두고 곧장 독서실로 향했다. 그해 대학입시가 딱 100일 남았을 때였다. 그는 '이건 신의 계시'라고 여겼다. "수학은 포기하고 공부한 결과 중앙대 경영학과에 합격했다"고 말했다. 회계사 될 사람이 수학을 포기했다니.

대학에 들어갔다고 다일까. 등록금밖에 없는 처지에 앞이 깜깜했다. 그러던 중 오리엔테이션에서 학장으로부터 귀가 번쩍 뜨이는 말을 들었다. 회계사 시험 합격하면 등록금 등 모든 학비가 면제라고. 문 회계사는 '이게 내가 살길이다' 하고 공부만 했다. 보통 4학년 때 합격하는데 그는 2학년 때 덜컥 붙었다. 학교에 플래카드도 붙었다.

그 후 삼일회계법인에 취직, 3학년 때부터 회사생활을 시작했다. 유명 회계법인에 갔으니 뿌듯했다. 그런데 이런, 이번엔 서울대 출신 '성골'들이 버티고 있었다. "상고 다닐 때는 은행만 가면 다 되는 줄 알았고, 대학 다닐 때는 회계사만 되면 모든 게 끝인 줄 알았는데. 취직하니 '유리천장'이 있더라." 그는 서울대 대학원에서 회계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군복무 경력도 특이하게 국방부에서 했다. ACC라고 회계사만 10명 정도 뽑는다. 군대에서 한 일은 방산물자의 원가 분석. 예를 들어 방산업체가 탱크를 만들면 원가에 10% 마진을 붙여 정부에 판다, 그래서 방산업체에 파견 나가 원가절감 하는 일을 했다. "방위비 절감에 많은 기여를 한 애국자다. 국방부 장관 상도 받았다"고 웃었다. 군대 가서도 숫자를 다룬 회계사 업무의 연장이었다. 슬슬 운명의 기운이 느껴졌다.

뉴욕 연수를 마친 1997년. 한국엔 IMF사태. 한국의 동기들은 나라 경제가 어수선하니 돌아오지 말라고 만류했다. 이것도 신의 계시였을까. 뉴욕에 정착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22년 회사에서 다진 실력
고객 생각한 서비스도 인정


3. 사업은 안 한다고?

그는 한국에서 10년, 미국에서 12년을 월급쟁이로 있었다. 자신은 사업가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사업가는 많이 벌기는 하지만 부침이 있기에 적당히 버는 안정적인 월급쟁이가 성격에 맞음에도 어느덧 개업한지 6년이 지났다. 이번엔 평탄한 세월이었을까.

그는 정말 열심히 일했다. 그 결과 고객이 쏟아져 들어왔다. 회계사 사무실에 소프트웨어를 파는 업자가 전하길 다른 회계사 사무실에서 난리가 났다. 문주한이 누구냐. 우리 고객 다 가져간다고. 갑자기 나타난 것 같지만 많은 사람들이 직장생활 1~2년 하고 개업하는데 반해 22년 직장생활로 이미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낭중지추'였다. 한국에선 감사 전문으로, 미국에서 세금을 주 업무로 하다 보니 IRS 감사(audit)를 많이 취급했다. 그는 많은 감사 업무로 납세자의 마음을 헤아린다. 고객의 입장에서 IRS의 의도를 잘 파악했기에 그 대처도 잘 했을 뿐.

어떤 고객은 25만 달러 세금보고가 있었지만 '0'으로 만든 케이스도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을 끌 수 있었고 성공을 할 수 있었다. 그 배경은 요행이 아닌 열정과 최선이었다.

뉴저지 사무실에는 큰딸과 함께 일한다. 세무 일을 하며 회계사도 준비 중이다. "2세 고객은 영어권이라 나보다 일 처리를 더 잘한다"고. 또 회계사 사무실은 잠재적 수요가 많다. 노후준비, 자녀 케어 등 관련 비즈니스가 많다. 그는 어카운트와 택스만 집중하고 딸은 관련 비즈니스로 시너지를 일으킬 수 있다고 본다.

딸과 함께 일하는 게 즐거운 그는 감사를 전문으로 하는 새 일을 시작했다. 한국의 상장회사의 미국 자회사가 그 대상이다.

예를 들어 한국 제약회사가 보스턴에 현지법인을 만들면 분기마다 영업결과 감사보고를 본사에 보낸다. 그 감사보고서를 만드는 일을 즐기며 한다. "보통 회계사는 세금만 다루는데 난 세금과 감사 모두 할 줄 알고 서류 양식도 미국과 유럽 기준 모두를 다룰 줄 알아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조지아주와 보스턴, 뉴저지에 진출한 지상사들 상대로 홍보하고 있다. 그는 앞으로 세금은 혼자 처리할 수 있는 시대라고 전망한다. 반면 감사는 판단의 문제이기 때문에 사업의 다각화를 꾀하고 있다. "미국 회사에 비해 합리적인 비용과 빠른 일 처리로 고객들의 만족도가 매우 높다". 누가 개업을 두려워한 사람이라 볼 수 있나. 이쯤 되면 프로다.

어머니가 얻은 옷 입고 등교
학교 친구가 "어, 내 옷인데"


4. 부잣집 섬 아이

1964년 충남 서해안의 안면도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아버지는 자식 교육을 위해 상경했다. 서교동에서 가수 하춘화의 옆집에 살았다. 당시 집에는 파출부가 있을 정도로 부유했다. 그것도 잠시, 아버지의 사업은 사기를 당해 완전히 망했다. 이제서야 사업을 안 하려는 이유가 이해됐다.

결국 서교동 부촌에서 인근 하천 주변의 판자촌으로 옮겼다. 그 판자촌에는 우리가 살던 부촌으로 일 나가는 파출부가 많았는데 어머니가 사모님에서 파출부가 됐다.

어느 날 어머니가 얻어온 옷을 입고 학교에 갔는데 친구가 '이거 내 옷이야'라고 해서 큰 충격을 받았다. 가정형편상 상고 재학 중에 학비를 못 내서 개근했어도 결석으로 처리된 경험도 있다. 이런 경험,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아이 넷도 다 커서 스스로 지금이 인생의 황금기라고 말한다. 둘째 딸은 의대를 준비하며 하버드 연구소에 다니고, 셋째 딸은 대학교 3학년, 막내아들은 지난해 9월 대학에 갔다.

"사업 잘 되고, 아이들도 다 컸고, 지금 보면 힘들게 산 것에 대한 보상 같다"고 말한다.

그럼 아내는? 소아과 의사다. 한국서 생물학을 전공한 덕분에 지금 뉴저지주 세인트 바나바스(St. Barnabars) 메디컬센터에서 재직 중이다.

월급이 2500달러이던 뉴욕 정착 초기, 아내는 돈벌이 대신 공부를 시켰다. 박봉에 렌트를 내면 반이 남는다. 그 반으로 아이들과 함께 살았다. "힘들었지만 아내가 공부를 한 것이 좋은 선택이었다"고.

레이먼드는 스트레스가 없다?

그는 두 가지 취미가 있다.

첫째 테니스. 일주일에 세 번 하는데 한 번은 꼭 아내와.

둘째는 책. "과거 보상심리가 아닌가 싶다. 초등학교 때 '전과'를 그렇게 갖고 싶었다"며 책에 대한 욕심을 드러냈다. 서재엔 수천 권이 꽂혀 있다. 문학.역사.고전 등 두루 섭렵한 독서광이다. 읽기에 그치지 않고 여행도 자주 간다. 어쩌면 여행이 버티게 하는 힘일지도 모른다. 오는 4월 17일 세금보고 마감 다음날 와이프와 함께 제주도 행 티켓을 예약했다. 이걸 모니터에 붙여놓고 일한다. 대개의 경우 그는 혼자만의 여행을 즐긴다고, 아는 사람은 다 아는 '남자의 고독, 혼자만의 여행'.

회계사란 직업은 하루 종일 의자에 앉아 있는 것. 시차가 있는 한국의 일도 많다 보니 야식이 잦다. 게다가 엄청 먹어댄다. 어쩌면 다음 도전은 다이어트일 것 같다.

"전 스트레스가 없어요."

아내는 둔해서 그렇다고 한다. 하지만 스트레스 받는 성격이 아니라고 한다. "전혀 없다. 왜 있지?"라고 반문한다.

얼마 전 실수를 한 직원을 해고했다. 잘못된 일 처리로 고객의 벌금 5000여 달러를 대납하고 바로 사과했다. 알고 보니 직원의 실수가 아닌 거짓말이었다. 그는 실수는 용서해도 나를 속인 것은 넘어갈 수 없다고 했다.

결국 고백한다. "스트레스가 왜 없겠나. 그래서 최소화하고 지낸다"고.

그는 "17살에 입학한 상고. 37년째 숫자를 다룬다. 정말 좋다, 천직이다. 숫자는 내 운명"이라고 말한다.

숫자로 둘러싸인 인생. 당신은 천직이라고? 기자는 머리가 아프다.


이승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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