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동서교차로] 살아있는 자들의 비명

세상이 달라졌다. 모든 게 달라졌다. 그리고 내가 달라졌다. 지난 달 과로 감기 몸살 독감 기관지염에 폐렴까지 겹쳐 죽을듯 아팠다. 2 주 동안 사경을 헤매며 까딱하면 요단강 건너 갈 뻔 했다. 죽음은 생명활동이 정지되어 다시 원상태로 돌아오지 않는 생물의 상태다. 숨 막힐 정도로 고통이 다가오면 생의 막다른 끝, 절벽에서 한 발자욱만 더 나가면 죽음의 낭떠러지로 떨어질 것 같은 공포가 목을 죄었다.

"오직 이 고통과 공포에서 살아나기만 하면…" 이라고 이를 악다물고 살기를 애원했다. 그리고 살아났다.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 지 확연하게 보인다. 삶의 목표와 각도가 수정됐다. 추구해야 할 생의 관점이 달라졌다.

이제, 평생토록 나를 힘들고 지치게 하던 욕구와 경쟁, 시간과의 전쟁에서 해방되는 자유로움을 만난다. 중요하던 것이 하릴없는 것이 되고 별 볼일 없던 일들이 의미있는 것이 되는, 쉬엄쉬엄 더디게 가는 자의 미덕을 배운다.

관점(觀點,Perspective)은 사물이나 현상을 관찰하고 생각하는 태도나 방향 또는 처지다. 사람은 나름대로 학문 지식 환경 삶의 방식에 따라 자신의 눈높이에 맞는 다양한 관점을 갖는다. 겪어보지 않고 안 당해 보면 남의 일은 모른다.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고는 함부로 말하지 말라'는 '역지사지(易地思之)' 공자의 가르침은 죽음 앞에 서면 큰 깨달음으로 다가온다. 내 알량한 지식, 손톱만한 재주, 눈꼽보다 작은 선심과 이기적인 베품, 모래알 같은 성취에 도취돼 바벨탑을 쌓고 한 치 앞도 못 보며 주변의 고통과 아픔에 냉정 했던 것은 아닐까.



'하늘이 갑자기 핏빛같은 붉은색으로 변했다. 나는 우울감에 숨을 내려 쉬었다. 가슴을 조여 오는 통증을 느꼈다. 내 친구들은 계속 걸어가고 있었고, 나는 자연을 관통해서 들려오는 거대하고 끝없는 비명을 느꼈다.' 에드바르 뭉크가 '절규'를 그리게 된 배경에 대해 쓴 습작노트다. 작품 속 해골 같은 대머리의 인물이 귀를 틀어 막고 놀라서 절규하는 것은 자연에서 들려오는 거대한 비명 소리 때문이다.

고통은 언제 어디서던 숨막히게 생을 조여온다. 귀를 틀어막고 눈을 감아도 고통의 실체는 사라지지 않는다. 고통과 공포는 살아있는 자들이 누리는 섬뜩이는 존재의 실체가 아닐까. 죽으면 고통도 죽음의 공포도 끝난다.

소실점(消失點,Vanishing point)은 눈으로 보았을 때 평행한 두 선이 멀리 가서 한 점에 만나는 곳이다. 원근법에서 실제로는 평행선이 되어 있는 것을 평행이 아니게 그릴 때에, 그 선이 만나는 점이다. '그 긴긴 길을 혼자서 걷다가는 추위와 고독의 압박에 못 이겨 그 긴긴 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나 또한 소실점이 되어 없어져 버릴 것 같다.' -박완서 소설 '꼭두각시의 꿈' 중에서.

우리는 생의 어디쯤에서 다시 만날까. 자신의 어깨에 진 짐의 무게로 평행선의 삶을 산다해도, 우리가 만나는 그 점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소실점이라 해도 나는 그대를 만나고 싶다. 그 곳은 생과 사, 고통과 환희, 아픔과 즐거움이 서로 만나 사망과 죽음, 질병과 고통의 공포가 사라지는 곳이므로. 살아있는 자들의 비명 소리에 놀라지 않으며 침울해 말고 절망하지 않고, 귀 막고 눈 감고 늘 봄 같은 햇살로 그대 곁에 가고 싶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생의 통찰이 아니라 각도다. 원근법의 접근이 아니라 그대와 내가 생의 어디쯤에서 만나는 소실점을 찾는 일이다. 눈높이를 조절하고 각도를 바꾸면 안 보이던 세상이 보인다.


이기희 / 윈드화랑대표·작가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