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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내가 만든 굴레

나는 지금 오늘을 살고 있는가?

요즈음 내가 내게 던지는 질문이다. 나로 말하자면 가까운 미래를 바라보며 사는 것이 습관인 사람이다. 젊었을 때는 미래를 바라보며 꿈을 꾸었지만 60이 된 지금은 미래를 바라보며 떨고 있는 고질병 환자이다. 남편은 나의 미래 두려움 증을 고치려 요즈음 몹시 고단하다.

나의 어머니는 치매로 꽤 오랜 시간 고생하고 계신다. 하지만 이것은 지극히 나의 주관적인 생각이고 실제로 어머니는 아무것도 모르신다. 그러니까 희노애락이 없으시다. 지켜보는 나만이 혼자 두려워하고 안타까워한다. 나의 증상은 똑똑하던 어머니가 저런 지경에 이른 것에서 비롯되어 나도 혹시 어느 날 저렇게 되면 날 어떻게 관리해야 하나 걱정하기 시작하는것부터 시작됐다.

난 이제 60인데 90살을 걱정하느라 아무것도 계획하지 못하고 남편이 기껏 내 머리에 새겨넣어준 이제 곧 시작될 찬란한 은퇴이후의 삶을 꿈꾸지 못하고 두려움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남편은 날마다 다시 이야기 해주고 난 박수도 짝짝치며 내후년이면 펼쳐질 그날을 좋아라 하지만 어느 순간 절대로 아이들 근처를 못 떠난다고 누가 우리를 책임 지냐고 그래도 핏줄이 최고라고, 내가 생각해도 이상한 어거지를 부리고는 한다. 이상한 어거지를 부리는데는 정말 비참하게 치매가 되어있는 늙은 내가 머릿속에 떠오르기 때문이다. 이것은 굉장한 두려움이었다. 남편은 이러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난 남편이 미래의 어느 날 가능성 있는 그 일을 대비 하지 않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불과 보름전만 해도 난 "멀리 어디를 몇 달씩 간다고? 안돼, 그러다 치매가 오면 누가 날 관리해?"하는 상상으로 두려움에 떨었다. 내가 두려워하는 건 치매에 걸렸다는 것을 정작 본인은 모른다는 것이다. 아무리 설명을 해도 남편은 끄떡도 않고 날 이해시키려 했고 말이 안 통하니까 끝내는 이렇게 말했다.

"그래 어느 날 치매가 됐다고 하자, 그래도 당신은 모르니까 괜찮아!!!!"

난 잠시 멍 했다. 치매에 걸린 난 알 수 없겠구나, 인간의 최소한의 존엄성을 지키며 두 눈 똑바로 뜨고 늙고 싶었던 나는 치매에 걸리면 그 존엄성도 연기처럼 내 머리에서 사라진다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는 없었다..

그러다 내게 자문했다. '넌 지금 언제를 살고 있니?' 생각해보니 한 30년쯤 미래에 그것도 확률이 반뿐이 안 되는 그것이 두려워 오늘의 시간을 낭비하며 떨고 있었다. 정말 바보같이…. 30년 후에 생기지도 않을 수 있는 그 일이 떠오르면 난 내게 질문 한다. "넌 지금 언제를 살고 있니?" 그러면 신기하게도 내 시간을 낭비 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과 함께 두려움을 떨칠 수 있었다.

이날 이후로 이 질문은 내 삶의 모든 일에 적용돼 골치 아프게 무언가 벌이고 싶은 유혹적인 건이 생겨도, '넌 지금 언제를 살고 있니?'라는 부적 같은 말을 떠올리며 "맞아, 몇 년 후에 무엇이 된들 뭐가 달라지나 난 오늘을 열심히 살고 내년에 은퇴하면 내게 남겨진 시간을 멋지게 쓰고 말테다. 가고 싶을 때 가고 돌아오고 싶을 때 돌아오리라‥" 하는 자유로움의 열망에 배짱이 두둑이 생긴다. 뭐 그렇게 멀리30년 후를…설령 내일 도둑처럼 슬며시 들어올 수도 있는 그놈 치매를 두려워했나, 확률은 반인걸….

사람이 마음먹기에 따라 천국과 지옥을 오간다고 하더니 난 스스로 지옥 속에 있었다. 지옥을 빠져 나오자 뜨거운 한증막에서 막 나왔을 때의 상쾌함과 가벼움에 날듯하다. 머리를 짓누르던 굴례를 떼어내자 비로소 은퇴 다음날의 가벼움이 마음에 다가온다.


박향숙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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