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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교차로] 지천명, 이제 시작이다

이기희 / 윈드화랑 대표·작가
이기희 / 윈드화랑 대표·작가  

[뉴욕 중앙일보] 발행 2018/08/24 미주판 15면 기사입력 2018/08/23 16:27

여자가 헤어 스타일을 바꿀 때는 변화의 조짐을 보일 때다. 수상쩍은 심경의 변화가 감지 된다. 머리를 확 자르기로 했다. 요즘 들어 뒤로 쪽진 올백머리 스타일의 내 얼굴 내가 보는 것도 짜증난다. 하물며 40년 동안 똑같은 내 모습을 보는 사람들은 얼마나 지겨웠을까? "쇼트컷 하면 10년은 더 젊어 보인다"는 매니저 말에 회까닥, 그동안 수차례 자를까 말까 우유부단 갈팡질팡 도로아미타불을 반복하던 행태에서 결단을 다짐했다. 가발가게에 가 한번 뒤집어 써보고 결정 하라는 충고도 과감히 무시, 토요일 화랑 문 닫자마자 미용실로 줄행랑 쳤는데 운명일까? 근교에 있는 두 집 다 일찍 문을 닫아 실패했다. 운명의 장난에 일단 진정하고 가슴을 쓸어내린다. 친구겸 후배인 젊은 여자에게 "머리 쌈빡하게 짜를까요? 요즘 넘 늙어 보여서…"라고 아까 보낸 문자는 답신이 여태 없다. 맘 급한 김에 왜 문자 씹느냐고 했더니 헐! 너무 황당하고 대책이 안 서 생각 중이란다. 나이 들어보여도 쪽머리 아이덴티티를 그대로 고수하는게 가장 나 답다고 충고 한다.

오래 전 '지천명(知天命)'의 내 나이는 흘러갔다. 쉰 살이 되면 하늘의 뜻을 알아 세상에 태어나 사는 까닭을 어렴풋이 깨닫게 되고 자기 의지만이 아닌 하늘의 섭리를 알게 된다는 말이다. 안 될 일에 억지 부리지 않고 쓸데없는 욕심에서 벗어난다는 내 50줄은 뒤늦은 방황과 연민으로 업치락 뒷치락 오락가락 했다.

공자는 논어(論語) 위정편(爲政篇)에 "나는 나이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吾十有五而志于學), 서른에 뜻이 확고하게 섰으며(三十而立), 마흔에 미혹되지 않았고(四十而不惑), 쉰에는 하늘의 명을 깨달아 알게 되었으며(五十而知天命), 예순에는 남의 말을 듣기만 하면 그 이치를 깨달아 이해하게 되고(六十而耳順), 일흔에는 하고 싶은 대로 하여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라고 적고 있는데 이건 순전히 공자님만 하실 수 있는 일이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열다섯 살 학문에 투신하는 지학(志學) 시절은 학생불가 영화관에 다니고 음악감상실에서 폼 잡고 노닥거리며 학기말 시험은 밤샘 초치기로 대응했다. 꽃다운 나이 스물, 방년(芳年)은 백마 탄 왕자를 기다렸고 서른살 마음이 확고해 진다는 이립(而立)은 남편 뒷바라지에 애 귀저기 갈며 밤을 샜다. 미혹의 나이 40은 흔들렸다. 바깥 사물에 미혹되지 않는다는 불혹(不惑)의 나이에 살아가야 할 길, 설 곳이 이곳 인가 망설였지만 내 선택에 집착했다. 60세는 이순(耳順)이라 부른다. 귀가 순해진다는 뜻이다. 웬만한 말은 걸러 듣고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뜻이다. 내 귀가 바람과 이슬, 풀꽃들의 언어를 들을 수 있으니 아! 나도 이제 이순이다. 일흔이 되고 종심(從心)의 경지에 이르게 되면 법과 원칙, 구속을 벗어나 하늘과 손 잡고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되길 소망한다. '행백리자 반구십리(行百里者 半九十里)' 100리 길을 가야 하는 사람은 90리를 절반으로 삼는다고 한다. 거의 다 왔어도 한 절반쯤 왔구나 하는 마음가짐이라야 생의 연륜이 새겨진 큰 나무에 아름다운 나이테를 둥글게 그릴 수 있을 것이다.

내 인생은 오늘도 내일도 지천명이다. 아직, 하늘의 뜻을 깨닫지 못했으므로, 하늘이 내 운명에 내린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원리를 깨우칠 때까지 내 인생은 언제나 꽃다운 지천명이다. 헤어스타일 바꾸는건 번번이 실패해도 내 맘은 언제던지 바꿀 수 있다. 그러니 오늘이 지금이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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