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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기고] 6·25 참전 유공자 임동근 선배를 추모하며

서장헌 / 전 주월 청룡부대 특공 중대장·현 청룡장학회 이사장, 예비역 해병 대령

지난 2월 19일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떠나가신 고 예비역 해병 대령 임동근 선배를 추모합니다.

1950년 6월 25일 북괴의 무력남침으로 인해 한국군은 후퇴를 계속하던 중, 동년 9월 15일 맥아더 원수(유엔군 사령관)의 극적인 인천상륙작전 성공 이후 수도 서울을 탈환하고 북진을 했으나, 38선 분단에서 적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혀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습니다.

1951년 6월 3일 중동부 전선 38선 북단 양주와 인제가 있는 태백산맥 중 가장 험준한 지역, 도설산 지구 일대에서는 양양에서 철원을 삼각저변으로 하고, 원산을 정점으로 하는 중동부의 3각 지형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지점에 있었기에 이 지대가 지닌 전력상 가치는 실로 중대했습니다. 적은 이곳에서 난공불락의 진지를 구축하고 아군의 공격을 저지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배치된 적은 인민군 최강부대인 제5사단, 제12사단, 제32사단이었고, 이곳에 배치된 아군은 미 해병대 1사단 및 한국 해병대 1연대였습니다(연대장 김대식 대령, 제3대 해병대 사령관 역임, 중장 예편).

당시 아군의 목표는 전방 24고지 도설산 펀치볼 탈환이었습니다. 이 곳은 북진의 관문이었기에 최초 미 해병대 1사단 5연대가 공격을 담당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한국 해병대와 임무교체를 했습니다. 당시 인접 지원부대로는 미 해병대 7연대가 우익을, 미 해병대 1연대가 좌익을 담당하였고 미 해병대 1개 공병대대 및 미 육군 11연대가 한국 해병대를 직접 지원하고 있었습니다.



한국 해병대는 40여 일간 치열한 공방 끝에 5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목표인 도설산 주요 고지들을 완전 점령하여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적 사살 2263명)

전략적으로 주요한 도설산 일대의 산악전에서 승리한 우리 해병대의 혁혁한 공훈에 대하여 당시 신익희 국회의장이 감사 전문을 신현준 사령관에게 보내왔고,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연대장 김대식 대령(은성 및 태극 무공훈장), 1대대장 공정식 소령(을지 무공훈장), 2대대장 윤영준 소령(을지 무공훈장), 주 공격부대인 3대대장 김윤근 소령(태극 무공훈장) 및 화기중대장 임동근 중위(충무 무공훈장) 외 여러 수훈자에게 훈장이 수여되었습니다.

40여 일간 대규모 산악전에서 승리를 이끈 우리 해병대는 차기 작전 수행을 위해 미 육군 2사단 28연대에게 지역을 인계하고 홍천 북방으로 이동, 북진을 계속했습니다. 당시 동부전선의 요충지 도설산을 확보한 소식을 접한 이승만 대통령은 직접 현장을 시찰하고 '무적해병' 휘호를 하사하셨습니다. 우리 해병대는 무적해병의 전통을 이어가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과 국가에 대한 충성을 다해왔습니다.

바로 6.25 북괴 남침 당시 도설산 전투의 영웅, 중화기 중대장 임동근 중위(예비역 해병 대령)는 얼마 전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가족들의 품에서 조용히 영면하셨습니다. 이곳 청룡회(해병대 장교출신 모임) 및 뉴욕해병전우회, 뉴저지해병대전우회 가족 및 많은 교인 등 200여 명이 고인의 장례식에 참석해 마지막 작별을 고했습니다.

북괴 6.25 남침으로부터 조국 대한민국을 지켜주신 선배님 감사합니다. 이제는 모든 것 잊으시고 하늘나라에서 편히 잠드소서. 남겨진 모든 이들의 마음을 모아 삼가 명복을 빕니다.

2019년 2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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