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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산책] 수상한 모국어

우리의 모국어는 지금 어디쯤 가고 있는 것일까?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조하던 시대의 언어를 기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류가 심상치 않다. 발전이나 진행처럼 건설적인 증상이 아니다. 불길한 변형과 이탈이 보여 해외에 나와 사는 우리에게도 안타까움을 느끼게 한다.

인간은 언어 안에서 생각하고 언어를 통해서 생각을 발전시켜 나간다. 인간이 동물보다 고등의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것도 언어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 드라마를 보며 불통을 느낀 적이 있다. 드라마 속 인물들이 사용하는 비속어와 은어는 필시 외계인들의 언어 같아 보였다. 드라마 속 한 십대 소년이 친구에게 말한다. "무지개매너." 다른 친구가 대답한다. "복세편살." 소년이 맞받아친다. "갈비." 그들은 짧게 말하고 짧게 대답한다. 바쁜 세상을 대변하듯 말이 짧아졌다. 대화는 문장이 아닌 줄임말이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교실 안이 싸움으로 북새통이 되었다. 도대체 무슨 말이 오갔기에 저 난리를 치는 것일까? 어리둥절 하고 있는 사이 일말의 양심있는 드라마 작가가 교실 속 한 학생의 입을 빌려 간접 통역을 해준다. '무지개매너'는 무지갯빛 매너가 아니라 매너가 매우 없다는 뜻의 무지+개+매너의 합성어였고 '복세편살'은 복잡한 세상 편하게 살자의 줄임말이었고 '갈비'도 갈수록 비호감이라는 줄이말이었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자연스러운 언어의 발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고유의 한글을 훼손하고 의사소통의 문제가 생긴다면 멈춰 서야 한다.

대부분의 줄임말이나 신조어는 외래어와 합성하여 만들어져 한글 맞춤법을 무시하는 경향이 많다. 한글은 자연스레 둔화할 것이고 언어의 고유함을 조금씩 파괴될 것이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언어가 변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그러나 너무 멀리 가는 것은 아닐까? 우리말의 봉건체계가 무너지고 전통 문화가 힘을 잃은듯 보인다. 우리는 예상 할 수 없을 만큼 줄기를 이탈해 버린 십대의 언어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분명한 것은 그들이 쓰는 언어는 장래 우리말의 얼굴이라는 것이다. 언어라는 것이 언어 하나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언어 속에는 생각이 담겨 있고 문화가 담겨 있다. 언어의 변질은 문화와 의식이라는 변질이다. 은어와 비속어와 턱없는 줄임말이 도를 지나치는 모국에서는 아날로그 시대의 부모들과 디지털 시대 자식들의 소통은 문제 없는 것일까?

발 빠른 부모들은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서 다가가야 한다고 어른들도 아이들이 쓰는 언어를 배워야 한다고 한다. 더 발 빠른 부모들은 은어와 줄임말을 쓰지 못하도록 어릴 적부터 맞춤법과 우리말 교육을 시켜야 한다고 한다. 언어는 사회의 동력이다. 한국어를 아름답게 발전, 계승하려면 무엇보다 언어의 의식이 필요하다. 품위 있는 언어의 동력만이 품위 있는 사회를 만들기 때문이다.

김주대 시인은 '영화가 있는 문학의 오늘' 2019년 봄호에서 이렇게 말했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문학은 느닷없이 오지 않고 SNS를 통해 야금야금 온다." 언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재미로 쓰는 비속어와 젊음의 상징이라고 여기던 은어들, 턱없이 줄여 자투리가 되어버린 줄임말이 야금야금 다가와 비집고 앉는다. 처음에는 생경했던 언어들이 어느새 일상 속에 자리 잡았다. 얼짱·몸짱·차도남·차도녀·만찢남·멘붕·강추·비추·빼박·득템·베프. 아니, 야금야금 궁둥이를 넓히고 자리를 넓혔다. 모국어가 수상하다.


김은자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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