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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마당] 레오니아 가는 길

이수임 / 화가·맨해튼
이수임 / 화가·맨해튼

[뉴욕 중앙일보] 발행 2020/02/08 미주판 18면 기사입력 2020/02/07 17:19

무작정 집을 떠나 어디론가 가고 싶은 화창한 날이었다. 레오니아에 사는 요리 잘하는 선배가 초대했다. 42가 터미널에서 뉴저지 가는 166번 버스에 몸을 싣고 창밖을 내다봤다. 소풍 가는 기분이다.

링컨 터널을 빠져나오자 오른쪽에 산등성이가 보였다. 뮤지컬로 히트 친 해밀턴의 권총 결투 현장 위호켄이다. 미국 한국 할 것 없이 밤낮 치고받고 싸우는 정치인들에게 총 한 자루씩 쥐여주고 200여 년 전 식으로 결투하라면 어떨까? ‘아이들에겐 사이좋게 지내라면서 왜 어른들은 싸울 궁리만 할까? 라는 엉뚱한 생각을 잠시 했다.

선배님은 로스구이·총각김치·오이소박이·물김치·잡채·멸치볶음, 각종 나물과 전, 된장찌개를 한 상 가득 차렸다. 잘 먹고 이야기하다 밤 9시쯤에 일어났다.

버스정류장 의자에 앉아 선배님과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며 버스를 기다렸다. 15분쯤 후 버스가 왔다. 찻길로 나가 손을 흔들었지만, 버스가 그냥 지나치다가 잠시 후 멈췄다. 밤에는 후레쉬 라이트를 비춰야 한다는 것이다.

현찰을 꺼내 버스비를 지불하고 지갑을 손에 쥔 채 버스 중간 오른쪽 좌석에 앉았다. 왠지 모르게 좌석이 불편했다. 왼쪽 맞은편 좌석으로 옮겨 앉았다. 내가 탈 때부터 유심히 보고 있던 내 뒤 남자가 갑자기 일어나 조금 전에 내가 앉았던 자리로 옮겨 앉더니 갑자기 벌떡 일어나 버스에서 내렸다. 순간 아차 싶었다. 핸드백을 뒤지니 지갑이 없다. 버스 좌석 바닥을 샅샅이 뒤졌지만 없다. 손에 쥐고 있던 지갑을 무릎 위에 놓고 있다가 자리를 옮기면서 떨어트린 것을 그 남자가 주어서 급하게 내렸을 것이라는 추측을 할 뿐이다.

날씨가 좋지 않았다면, 레오니아를 가지 않았다면, 버스를 뒤쫓아가지 않았다면, 지갑을 핸드백에 넣었다면 그리고 자리를 옮겨 앉지 않았다면 잃어버리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좋겠지만, 결국엔 내가 차분하게 행동하지 않은 결과다. 아무리 조심해도 문제를 만드는 삼박자가 잘 맞아떨어지면 터질 일은 터진다.

정확하게 열흘 후 50전짜리 우표 다섯 개가 붙여진 두툼한 노랑 봉투를 받았다. 보내온 주소가 뉴저지다. 버스 안에서 내 지갑을 주웠다는 메모가 있었다. 현찰만 없어지고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정말 고마웠다. 밤새 어떻게 감사의 마음을 전할까 궁리했다. 다음 날 아침 두 손을 포개고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카드 크기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뒷면에 고맙다는 내용의 편지를 길게 써서 보냈다.

누굴까? 이렇게 지갑을 정성스럽게 보내 준 사람이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해 이름과 주소를 구글에 쳤다. 얼굴이 떴다. 내 눈이 잘못됐다면 모를까. 내가 버스를 탈 때 나와 눈이 마주쳤던 그 남자다. 그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하도 빤히 쳐다보기에 혹시 아는 사람인가 해서 확인하듯 다시 쳐다봤던 그 남자다.

아니다. 절대 그럴 리 없다. 나의 착각이다. 내가 이상하게 꼬였다. 서쪽에서 뜨는 해를 맞이한 듯 왜 이리 정신 나간 생각을 할까? 나 자신에게 짜증이 슬슬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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