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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믿음] 순례자의 노래

김문수 / 퀸즈 정하상 천주교회 주임신부
김문수 / 퀸즈 정하상 천주교회 주임신부

[뉴욕 중앙일보] 발행 2018/03/27 종교 18면 기사입력 2018/03/26 22:22

누군가 인생은 순례라고 했습니다. 지난 40일간 사순 순례의 막바지에 접어들며 문득 가톨릭 성가 463번 '순례자의 노래'가 생각납니다. "인생은 언제나 외로움 속의 한 순례자 찬란한 꿈마저 말없이 사라지고 언젠가 떠나리라. 인생은 나뭇잎 바람이 부는 대로 가네 잔잔한 바람아 살며시 불어다오. 언젠가 떠나리라. 인생은 들의 꽃 피었다 사라져가는 것 다시는 되돌아 오지 않는 세상을 언젠가 떠나리라." 참 서정적인 성가입니다.

사순의 막바지 성주간에 접어들며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생각하고 떠올린 성가입니다. 성주간의 끝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신앙의 절정인 성삼일입니다: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 '십자가위에서의 죽음' 그리고 '빈무덤.' 이 일련의 사건이 2000년이 지난 지금도 수 천 만의 그리스도인 가슴 속 깊은 곳에 살아있는 삶의 희망의 이유입니다. 그래서 삶의 무게를 관조적.서정적으로 노래할 수 있나봅니다.

예수님께서 가슴 사무치게 아픈 제자의 배신과 죽음을 예견하시고 제자들과 나눈 마지막 저녁 처절한 수난과 치욕스러운 죽음을 당하시면서도 계속해서 되뇌이는 말씀은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무엇이든 하실 수 있으시니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원하는 것을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을 하십시오" (마르코 14:36)입니다. 배신과 죽음에 직면한 예수님의 마음이 괴로워 죽을 지경에 이르셨음에도 계속해서 자신의 뜻이 아니라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따라가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말씀이 사람이 되신"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두려움의 유혹을 이기고 받아들인 죽음은 더 이상 처절하고 비참한 죽음이 아닌 거룩하고 아름다운 죽음이 됩니다. 제자들이 찾은 예수님의 무덤이 텅 비었기 때문입니다. 텅 '빈 무덤'을 발견한 제자들은 처음엔 그 의미를 몰랐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뵙고 그제야 깨닫습니다. 그 무덤은 죽은 시체가 썩어가는 냄새로 가득 차지 않고 부활하신 주님의 영광이 가득한 희망의 상징임을 알게 됩니다. 교회는 이를 파스카의 신비라 부릅니다.

제자의 배신과 수난 그리고 죽음을 홀로 온전히 받아내시고 보여주신 빈 무덤이 들려주는 예수님의 이야기는 우리 삶의 진리입니다. 삶의 무게에 지쳐 힘들어하며 가까운 이들에게 자신의 고통을 전가하고 자신의 욕망을 위해 이웃을 이용하고 착취하는 이들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고통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욕망은 부질없는 유혹이라고 그리고 당신의 빈 무덤처럼 마음을 비우고 하느님의 말씀이 한 여름 시원한 바람처럼 자유로이 불게 하라고….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을 위시로 당신의 수난과 죽음 부활을 기념하며 지내는 성삼일(Triduum) 즉 성목요일 성금요일 성토요일의 부활성야 미사는 우리 신앙과 삶의 클라이막스이며 신비의 축제입니다. 그래서 파스카 신비가 이제는 따뜻하고 평화로운 서정적인 노래가 됩니다.

믿는 이들의 가슴을 따뜻이 데워주고 삶의 무게에 지친 이에게 위로가 됩니다. 아파하는 이를 치유해주며 외로운 이의 친구가 되어주고 억울한 사람의 정의가 되어줍니다. 그래서 우리 삶의 무게와 두려움이 가슴을 짓누를 때 영원한 평화를 그리며 '순례자의 노래'를 부릅니다. "인생은 언제나 주님을 그리는가 보다 영원한 고향을 찾고 있는 사람들을 언젠가 만나리라."

고단한 삶의 무게에 지쳐 두려운 마음으로 밤을 하얗게 지샌 이에게 다가와 빵을 쪼개어 주며 "와서 아침을 먹어라 (요한 21: 12)"라고 하는 예수님의 속삭임이 따스한 봄바람 결에 불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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