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의 눈빛
지나온 길을 되돌아 본다기찻길에서
긴 직선의 종말을
어둠이 산모퉁이 도는 바람을 붙잡는다
달려도 끝이 없는 바람의 길
직선으로 잘려진 종이는 뜨거운 다리미 밑에서도
여전히 직선이다 직선은 곡선 속에 있을 때
곡선은 직선 속에 있을 때 더욱 아름답고
제 구실을 한다
난간에 앉았다 원을 그리며 날아가는 비둘기 한쌍
기다림의 눈빛도 둥그렇다
그들의 결실도 당연히 부드러운 타원형이다
바람이 달려와 빠르게 반 토막의 동그라미를 만든다
바다는 아름다운 곡선을 선호한다
물 위에서도 물 밑에서도 밤 새워 피우는 수천 개의 꽃무리
파도를 사랑하는 갈매기의 삶도 둥글게 일려오고 밀려가고
직선 뒤에 따르는 그림자의 눈물 같은
젖은 땅이 그리운 빗방울
둥근 원 속에 가둬진 나의 희미한 시어들 밖으로
어둠과 대면하는 첫 눈빛으로
정숙자 / 시인·아스토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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