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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기자 칼럼] '조승희'를 '승희 조'로 바꾼 사람들

버지니아 공대 총기난사사건 발생 후 많은 한인들은 그 파장이 어디까지 이어질까를 두려워했다.

언론들은 일제히 '한국 국적 출신의 조승희는…'이란 말을 되풀이 보도했다. 15년 전 LA폭동을 기억하는 한인들은 그때의 갈등이 또 일어나진 않을까 우려했다.

조씨의 범행은 비록 이민사와 관계가 있을 지는 몰라도 국적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언론들은 역사상 최악의 캠퍼스총격사건의 가해자인 조씨의 이름을 굳이 한국식으로 불렀다. 맨 처음 경찰이 그의 이름을 발표할 때 한국식으로 불렀기 때문이라는 것이 공식적 이유였다.

그러던 언론의 기류가 바뀐 시점은 4월 20일. AP통신이 가장 먼저 조씨의 이름을 미국식으로 바꿔 쓰겠다는 방침을 기사 형태로 발표했다. 그 후 뉴욕타임스 ABC NBC FOX뉴스 등 대부분의 언론이 약속이라도 한 듯 가해자의 이름을 바꿔 불렀다.



조승희(Cho Seung-Hui)가 아니라 '승희 조(Seung-Hui Cho)' 또는 조씨가 학교에서 쓰던 이름 '승 조(Seung Cho)'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AP통신사는 '조씨는 미국에서 자란 한국 국적자이기 때문'이란 설명을 덧붙였다.

미 언론들이 갑자기 이름을 바꿔 부른 이유는 무엇일까. 언론인들의 자성적 고찰에서 나온 결과일까.

숨은 주역은 바로 한인 1.5세 2세 입양인 출신 언론인들이었다. 그들은 이름을 어떻게 부르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그 차이점을 데스크 각 언론사에 강력하게 어필한 것이다.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의 지역신문사 '클리블랜드 플레인딜러'의 한인 기자 자넷 조씨는 우연하게도 범인과 성이 같았다. 아시안아메리칸언론인협(AAJA) 신문분야 부회장을 맡기도 한 그는 에디터들에게 다가가 자신이 쓴 기사엔 '자넷 조'라는 미국식 이름을 붙이는데 기사 안의 조승희 이름만 한국식으로 보도하는 것에는 미묘한 의식적 차이가 있음을 설명했다.

요컨대 '조승희'라고 한국식으로 부를 때는 조승희를 한국 사람으로 본다는 것이고 '승희 조'라고 부르는 것은 조승희를 미국인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워싱턴 포스트 경제부에서 일하는 데이빗 조 기자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조씨 이름을 바꾸는데 그치지 않고 한인타운으로 취재를 나가 커뮤니티의 속마음을 담아냈다. 2세지만 한인 사회의 정서를 이해하는 그는 버지니아공대 사건을 담당 50인치 길이의 대형기사를 제작해냈다. 미국인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1.5세의 개념과 이들이 가진 고민 등을 설명한 것도 그였다.

뉴욕타임스 인터넷판이 조승희의 범죄동기를 한국 영화 '올드보이'에서 찾는 어이없는 기사를 내보냈을 땐 모두 인터넷 댓글을 달아 기사 요지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했다. 이 기사는 3시간만에 자취를 감췄다.

각지의 한인 언론인들이 한인언론인협(KAJA)이란 조직망을 통해 뭉쳤다. 이메일과 팩스로 수시로 한인 타운 동정을 살폈다. 각 지역 신문사 한인 기자들은 혹시 모를 분풀이격 폭력이 있을까 두려워 하는 한인들의 목소리를 지면으로 실어날랐다.

전국 2000명의 아시안 언론인이 회원으로 가입해 있는 AAJA는 한인 기자의 권고로 제작한 공문을 미 언론사로 일제히 보냈다. 범인이 아시안 남성이라고만 밝혀졌을 때도 '범행이 국적 또는 인종과 직접적 연관이 있지 않는 이상 이를 강조하지 말아달라'는 공문에 이은 2차 공문이었다.

물론 조승희 사건은 분명 불미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통해 이민100주년을 맞이한 한인 사회가 이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역량있는 한인 언론인을 심을 수 있는 단계까지 이르렀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미국 내 아시안은 4%밖에 지나지 않는다. 전체 언론인 중 아시안은 이보다 적은 3.27%에 불과하다.

하지만 해가 지날수록 TV브라운관과 신문지상에 반가운 아시안 기자의 얼굴과 이름이 보인다. 더 많은 한인이 언론계에 진출해 뉴스룸에 올바른 시각을 전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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