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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의 독립운동, 숨결을 느끼다…서재필의 흔적을 찾아서 <상>

광복 70주년 특별기획 II

필라 외곽 서재필기념관
이역만리 활동 시절 자택
당시 사진·자료, 유품 전시
1994년 주 사적지로 지정
1999년 김대중 대통령 방문
한인에 역사 교육의 장으로


서재필(미국이름 Philip Jaisohn 1864~1951.사진)은 미 시민권을 취득한 최초의 한국인으로 미주 한인사회의 상징적인 존재다. 20세 때인 1884년 12월 김옥균.강영효.서광범과 함께 '갑신정변'을 일으켰지만 실패 후 역적으로 몰려 일본으로 망명한 서재필은 일본도 안전하지 못하다고 판단 다시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망명했다. 존 홀렌벡이라는 사업가의 도움을 받아 2년 후 필라델피아에 정착한 서재필은 명문 사립고인 '해리 힐만 아카데미'에 입학해 그곳에서 미국의 역사와 민주주의 제도에 대해 배우게 된다. 1892년 컬럼비안 대학(현 조지워싱턴 대학의 전신)에서 한인 최초로 의학박사가 됐고 이듬해 정식 의사면허를 받았다. 대학 재학 중이던 1890년 한인으로는 최초로 미 시민권을 받았다.

서재필은 제1차 한인대회 개최 한국 홍보국 설립 월간지 '코리아리뷰' 발행 워싱턴 군축회의 참석 등 미국에서 활발한 독립운동을 벌였다. 필라델피아는 서 박사가 청년 시절부터 사망 전까지 생활의 근거지로 삼은 곳이다. 본지는 광복 70주년을 맞아 필라델피아 일대를 방문 서 박사의 발자취를 더듬어봤다.

1988년 기념공원 겸 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
1987년 경매 위기서 재단장
유학생 출신 한인부부가 관리
인근 1975년 건립한 기념비
지역정부 부지 무상 제공




◆서재필기념관=지난 11일 뉴욕시에서 자동차로 2시간30분가량 떨어진 필라델피아 외곽 '미디어(Media)' 보로의 서재필기념관(100 이스트 링컨스트리트)을 찾았다. 미디어는 필라델피아에서 서쪽으로 12마일 떨어진 곳으로 5000여 명의 인구가 거주하는 아담한 도시다. 기념관은 서 박사가 일제에 빼앗긴 고국의 독립을 위해 이역만리에서 활동하던 시절 살았던 자택(1924~51년 거주)이며 이승만.조병옥.임병직 선생 등 수많은 독립지사들이 조국의 독립을 협의하기 위해 드나들었던 곳이기도 하다.

서재필기념관이라는 작은 표지판이 나오고 주차장이 따로 없어 주변 도로에 차를 세우고 안으로 들어가자 오른쪽에 자그마한 2층 건물의 기념관이 보인다. 서박사가 사망하기 전까지 살던 집을 보수한 기념관은 1984년 둘째 딸인 뮤리엘 제이손(Muriel Jaisohn)이 사망한 후 빚 때문에 경매에 부쳐질 뻔했던 것을 서재필기념재단이 87년 구입해 90년 11월 24일 기념관으로 재단장해 개관했다. 2004년에는 건물 내부를 대대적으로 개.보수했다.

4개의 방으로 꾸며진 기념관은 서재필의 사진을 비롯해 그와 관련된 신문 영자본 및 서류 사본 등 역사적 유품을 보존.전시하고 있다. ▶근대개혁운동 ▶독립운동 ▶통일.민주국가 수립운동 ▶가족과 생활 등 시대와 주제별로 각종 전시품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다.

1층 오른쪽 방은 서 박사의 초창기 삶을 주제로 구성돼 있다. 갑신정변과 개화운동까지의 내용들과 갑신정변 실패 후 미국에서 살면서 영어 공부를 위해 만든 영한 사전도 전시돼 있다. 입구 바로 앞에 비치된 방명록에는 뉴욕.뉴저지는 물론 미 전역에서 온 방문객들이 서명이 남겨져 있다. 지난 1999년 7월에는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방문하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은 광복 후 초대 대통령을 뽑을 당시 서 박사에게 대통령 출마를 권하는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이 서한은 기념관 2층에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다.

서재필기념재단 최현태 회장은 "오늘날 서재필기념관은 수많은 한국인 유학생과 동포들 그리고 뜻 있는 많은 미국인이 찾아와 그의 정신을 되새기는 역사의 교육장이 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1층 왼쪽 방에서는 서 박사의 주요 활동 사항을 담은 영상물이 흘러나온다. 20분 분량의 이 영상물은 서 박사의 출생부터 갑신정변 미국에서의 정착 과정 독립운동 활동 등이 자막.내레이션과 함께 소개된다.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 벽에도 서 박사의 활동 사항이 담긴 전시물들이 빼곡히 차지하고 있다. 갑신정변 실패로 가족을 다 잃고 시작한 미국생활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미국의 수도 워싱턴DC에서 한인 최초로 의사가 된 서 박사의 집념과 미국에서도 조국을 걱정하는 그의 애국심이 사진 한 장 한 장에 그대로 녹아 있었다.

서재필기념관은 1994년 펜실베이니아주 사적지로 지정됐다. 건물 밖에는 '한국식 정원'이 조성돼 있다. 서재필기념관의 주변 녹지는 둘째 딸인 뮤리엘이 말년에 자기 소유 중 일부를 미디어 보로에 기증하면서 조성됐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미디어 보로는 1988년 서재필기념관과 그 주변을 서재필기념공원 겸 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했다.

현재 서재필기념관은 매월 첫째 주 토요일에 정기 개관하고 예약 방문객에 한해 추가 개관을 하고 있다. 유학생 출신의 이기원.백아연 부부가 서재필기념재단에서 제공하는 기념관 앞 주택에 거주하며 올해로 3년째 서재필기념관을 관리하는 일을 맡고 있다.

이씨는 "(기념관 관리인으로) 여기에 온 것 자체가 큰 인연이라 생각한다"며 "독립운동가의 집이 남아 있는 곳이 전 세계에서 서재필기념관이 유일하기 때문에 이런 곳을 지킨다는 것에 항상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서재필기념비=기념관에서 자동차 15분 거리에 있는 로즈트리(Rose Tree) 공원 동쪽에 있는 서재필기념비는 1975년 11월 22일 필라델피아지구 한인협회의 주도하에 한국 정부와 한인 동포들의 성금으로 건립됐다. 특히 기념비 부지는 펜실베이니아주 델라웨어카운티가 서재필을 높이 평가해 무료로 제공한 것이라고 한다.

서재필기념비의 앞면에는 '겨레의 선각자 송재 서재필 박사 기념비' 그리고 'Dedicated to the memory of Philip Jaisohn M.D. 1866-1951 A Great Korean-American'이라고 새겨져 있다. 서재필기념비는 김흥수 화백이 제작했고 비의 뒷면에는 노산 이은상 시인과 이정식 펜실베이니아 대학 교수의 글이 한글과 영문으로 병기돼 있다. 또 이은상 시인이 비문을 짓고 서예가 일중 김충현 선생이 비문을 썼다고 기록돼 있다.

서승재 기자

seo.seungjae@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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