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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문인 글동산: 안문자(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지부)

[시애틀 중앙일보] 발행 2016/01/12 미주판 4면 기사입력 2016/01/12 11:41

HAPPY NEW YEAR!!

나는 새해에 ‘복 많이 받으세요.’를 하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 새해 첫 주일 예배 후, ‘복 많이 받으세요!’ 인사가 복도에 가득해서 복이 진짜로 번쩍이며 내려오는 착각이 들 정도로 흥분된 분위기였다. 복을 받으라고 하면,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복 받을 만한 삶을 살아야 복을 받지. 복, 복, 기복신앙을 기다리는 것 같아서 나는 어물어물 애매한 웃음만 날리고 있었다.

아주 옛날에(1819)설날이 되면 삼일동안 남녀노소가 때때옷을 입고 길거리를 메웠다고 한다. 서로 인사하기를 ‘새해에 안녕하시오?’ ‘올해에는 꼭 과거에 급제 하시오.’ ‘승진하시오.’ ‘득남 하시오.’ 이렇게 구체적인 인사들을 했다고 기록에 있다. ‘복 많이 받으시오.’는 없었단다. 그러니까 운이 좋거나 본인이 노력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열심히 일하며 바르게 산다면 누구에게나 돌아오는 일상의 복들을 서로 빌어주었다.

우리는 흔히 복이라면 오 복을 생각하지만 나는 성경에 나오는 복을 떠올리게 된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누가복음에 나오는 <팔복>이다. 우리가 말하는 복을 받으라고 하는 복과 판이하게 다른 복 이야기다. 팔복은 이해하기 어렵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고정관념을 깨 엎으신 일이 많다.

그것 중에 하나가 복이다. 가난한 자가 행복하다고 하셨으니 얼마나 이상한가? 복을 받는 다는 것이 단순하게 받으라, 받고 싶다, 하나님은 내가 이렇게 하면 복을 주시겠지.....가 아니라 복을 받기위해서는 이렇게 어려운 일이라는 뜻이다. 나는 늘 여기가 어렵다. 복의 개념을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복이 진짜 복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해에 복 많이 받으세요. 라고 인사를 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일하고, 먹고, 잠자고, 서로 돕고, 희생하고, 사랑하는 삶, 그러니까 나를 비우고 남을 이해하고, 남을 불쌍히 여길 때,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할 때, 하나님이 복을 주신다고 예수님께서 가르치셨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한자에게 복을 줄 터이니 이제 부자가 될 거야, 그래서 가난한 사람도 행복하다고 하지 않으셨다. 무슨 말씀일까? 그런데 내가 무릎을 탁 치며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어느 여 신학자의 설교에서다.

그는, 예수님께서는 가난하기 때문에 행복하다고 말씀하셨는데, 이분의 해석은, 가난한 자에게는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가 있다고 했다. 부자에게는 친구가 없나? 하겠지만 우리가 깊이 생각해 보자. 부유한 사람들 주위에는 진정한 친구가 없을 것 같다.

가족끼리도 싸운다. 부를 잃어버릴 가 봐 의심하며 전전긍긍 도사리게 된다. 우리가 가난할 때 형제들의 우애가, 친구들의 우정이 얼마나 깊었나? 서로 기도해 주고 서로 위로해주며 눈물을 흘려 줄 때가 언제였는지 생각해 보면 안다.

젊은 시절 어느 목사님이 누가복음에서는 가난한자를 축복했는데 마태복음에서는 부자들이 충격을 받을 가 봐 그랬는지 마음이 가난한 자라고 했다 해서 교인들이 웃었던 일이 생각난다. 어떻든 부는 축복이 아니라고 설교했다.

그러니까 복 받는다는 것이 부자가 되리라는 생각을 하며 인사를 한다면 맞지 않는다. 요즘 한국에서는 새해에 복 많이 받으세요, 도 아니고 ‘부자 되세요,’ 로 바뀌었단다. 더 지독한 것은 돈 벼락 맞으세요, 라나. 물론 웃기느라고 하는 인사일 게다.

‘네가 누리는 복을 세어 보아라.(Count your blessings)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는 찬송이 있다. 이 찬송은 이미 우리가 복을 많이 받았으니까 세어 보라는 찬송이다. 어려서 이 찬송을 부를 때 보글보글이라며 재밌어 했었다. 아무리 삶이 고달프고 힘겨워도 받은 복을 세어보면 이미 다 받았다는 것 아니겠나. 나도 받은 복을 세어보면 끝이 없다.

물질적 가난은 불행이며 인간관계에 파탄을 가져 올 수도 있다. 그러나 진정한 행복을 추구하는 인간관계에서는 가난은 우정의 기초라고 어느 신학자가 말했다. 그래서 가난이 복이라고 생각 할 때에는 우리는 누군가의 덕분으로 살아간다고 감사할 수 있다.

이것을 은혜라고 말하는 것이리라. 내가 살아 있는 것은 누군가의 도움이요, 누군가의 사랑으로 사는 것이다. 누군가가 베풀어 주는 은혜이다. 서로, 덕분에 사는 세상이 은혜로운 세상 아니겠나. 이것이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복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나는 새해 인사를 어떻게 할까? 내가 바라는 것은, 어떤 세상에서 어떻게 사는 것일까? 2016년에 내가 바라는 복이란 무엇일까?

아기들은 평화롭게 무럭무럭 잘 자라고, 젊은이들은 희망을 향하여 씩씩하게 살아가고, 어른들은 힘들어도 서로 도우며 기쁘게 살아가고, 늙은이들은 노년의 즐거움을 누리고. (설명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생략한다.)

참 좋습니다. 정말 신나는 일이군요. 보람이 큽니다. 세상사는 재미가 있습니다. 감사할 일이 너무 많군요. 이렇게 평화로운 세상에서 이런 인사가 오고가는 2016년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어쨌거나......쳐칠이 말했다지. ‘승자는 샴페인을 마실 자격이 있고, 패자는 샴페인을 마실 필요가 있다’고. 그러니까 우리는 누구나 다 축배를 외칠 자격이 있다.
'HAPPY NEW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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