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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일어선 피아니스트 머레이 페라이어"

[밴쿠버 중앙일보] 기사입력 2007/03/20 08:31

[음악전문 기자 최예린의 공연리뷰]

‘턱이 빠질 정도로 빠른 스피드’에 충격
21세기 대표하는 10대 피아니스트에 관객들 기립

3월3일 토요일 오후 8시
Chan Centre for the Performing Arts at UBC
Bach (1685?1750) Partita No. 2 in C minor BWV 826
Beethoven (1770-1827) Piano Sonata No. 15 in D major, op. 28 “Pastoral”
Robert Schumann (1810-1856) Fantasiestücke, Op. 12
Chopin (1810-1849) Ballade No. 4 in F minor, op.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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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 최고의 미국 출신 피아니스트로 인정받고 있는 머레이 페라이어가 3년 만에 노스 아메리카 무대로 돌아왔다.
지난 2004년 이래 전 세계 모든 연주 일정을 취소한 바 있는 그가 복귀를 선언하는 첫 무대로 밴쿠버를 선택한 것.

페라이어는 한창 전성기를 구가하던 1990년대 초반, 그리고 다시 2006년, 엄지손가락 부상으로 인해 두 차례의 대수술과 재기를 반복하면서 인생 역전의 드라마를 펼쳐 보이고 있다.

지난 3월 3일 토요일 저녁 어스름, UBC에 자리잡은 챈 센터 주변은 난데없는 교통체증에 시달렸다.


평소에는 공연 시각에 앞서 한 30분만 일찍 도착해도 느긋하게 주차할 수 있었는데, 그날은 아니었다.
챈 센터로부터 무려 수 킬로미터나 떨어진 블랑카 스트리트부터 거북이 운전을 하던 차들은 웨스트 블로바드에 이르자 아예 멈춰 서 움직일 줄 몰랐다.


꽉 막힌 차 안에 갇혀 있다 보면 별별 생각과 기억들이 실오라기처럼 잡혔다가 사라지고, 그것들이 다시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혔다가 끊어지곤 한다.
지난 2002년 5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서울 예술의 전당 무대에 오를 당시 머레이 페라이어는 단정하고 꼼꼼한 바흐와 모차르트 해석가로서 이름을 드날리고 있었다.


그의 이미지는 놀라운 테크닉과 넘치는 감성, 그리고 과장된 제스처로 청중을 제압하는 비르투오조가 아니라, 명료하고 투명한 음색으로 가슴을 적시는 이른바 ‘건반 위의 음유시인’이었다.
매우 공손한 그의 태도는 오히려 해가 될 정도여서 살아 있는 전설로 불리는 다른 두 선배 피아니스트, 알프레드브렌델과 마우리치오 폴리니가 가지고 있는 카리스마를 그리워하게 했었다.


인생 역전의 드라마

머레이 페라이어를 보기 위해 몰려든 청중들은 말 그대로 흘러 넘칠 지경이었다.
좌석이 모자라서 뒤늦게 오픈한 합창석까지 밀고 들어온 청중들은 페라이어가 무대에 오르기 전부터 열광적인 박수를 보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지난 1990년 밴쿠버 데뷔 무대를 연 이래 모습을 보이지 않다가, 그나마 지난 2005년 밴쿠버 리사이틀 소사이어티 창단25주년 축하 오프닝 무대도 취소한 바 있다.


그 동안 그는 피아니스트에게는 사형선고와도 같은 손가락 부상으로 두 번에 걸쳐 대 수술을 받았다.
이런 탓에 우리는 음반으로만 페라이어를 기억할 뿐, 그가 둥지를 틀고 있는 영국 런던을 제외하고 실제 공연장에서 얼굴 대하기란 거의 불가능했었다.
페라이어는 이번 밴쿠버 공연을 첫 신호탄으로 공식적으로 만 3년 만에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북미 무대로 복귀하는 것이다.


리트머스 시험지

페라이어의 재기를 알리는 이번 공연 프로그램은 매우 도전적이라 할 만하다.
그는 바흐의 파르티타, 베토벤의 전원 소나타, 슈만의 환상소곡집, 쇼팽의 발라드 등18세기 고전시대와 19세기 초기 낭만주의를 음악 역사적인 순서에 따라 연주했다.


지난 30여 년의 연주 생활 동안 페라이어는 이 영역에서 최고의 해석가로 이름을 날리면서 각종 최고 음반상을 휩쓸었었다.
그러니까 이 곡들을 다시 연주해 보이겠다는 것은, 일종의 리트머스 시험지처럼, 실제 공연에서 ‘다시 한번 재평가 받겠다’는 숨은 뜻이 담겨 있는 것이다.


쏟아지는 박수 갈채를 받으며 천천히 무대에 오른 페라이어는 예전처럼 공손하고 다소곳하게 인사를 올렸다.
그러나 피아노 앞에 앉자마자 터져 나오는 소리는 거의 충격적인 것이었다.
그의 손가락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건반 위를 날아다녔다.
‘탄탄하고 구조적이며 명상적인 바흐 해석자’로 알려진 그의 평소 연주 속도에서 거의 두 배쯤 빨라졌다.
마치 터보 엔진을 장착한 것 같았다.


그리고 이어 연주한 슈만의 환상소곡집 또한 큰 충격을 몰고 왔다.
우리는 이제까지 이 세상에서 이렇게 격심한 대조(서정적이고 우아한 악장과 테크니컬한 악장 사이의 변화)를 보이는 슈만을 들어본 적이 없다.
마치 바르톡을 듣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스타일의 대 변화

인터미션 동안 청중들은 약간 얼빠진 표정으로, 목소리를 잔뜩 낮추고 눈짓 손짓으로 의견을 주고받았다.
그들이나 나나 ‘턱이 빠질 정도로 빠른 스피드’에 놀라버렸고, 청중과 피아노를 완전히 제압 (Command of detail and structure)하는 페라이어의 새 스타일이 던져준 충격에서 헤어나질 못했다.
그러나 스피드와 대조, 그 어디에도 아무 잘못이 없지 않은가. 오히려 한 음 한 음이 가슴을 파고들고 와 ‘아, 아름답다!’고 느껴진다.


2부에서 연주한 베토벤의 전원과 쇼팽의 발라드, 그리고 앙코르로 연주한 슈베르트의 즉흥곡(Impromptu in E flat, D.899)까지 이 놀랄 만한 스피드와 통제력, 음 한 올 한 올까지 건져 올려지는 듯한 세부적인 묘사는 팽팽하게 유지되었다.


마침내 완전히 기진맥진해진 페라이어가 피아노 건반에서 손을 떼자, 청중들은 모두 일어나서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박수를 보냈다.
두 번, 세 번 다시 무대에 오른 그는 다시 공손한 페라이어로 돌아와 있었고, 멈출 줄 모르고 이어지는 청중들의 박수 갈채는 진정한 음악가에 대한 감사와 존경심, 그 자체였다.


공연이 끝나고 나서도 이례적으로 CBC-FM 채널에는 연일, 페라이어가 펼친 감동의 재기 무대와 새 스타일에 대한 편지와 의견이 끊이질 않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폭발적인 음악애호가들의 관심에 힘입어, 머레이 페라이어 특집 방송이 기획된다고 한다.


확실히 이번 공연은 올 시즌 전체를 통틀어 가장 성공적이며 일생을 통해 두고두고 기억될 만한 사건이었다.
(오는 3월 23일, 알프레드 브렌델의 밴쿠버 공연이 바짝 다가온 터라, 시즌 기록을 갱신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

인생 역전 드라마의 주인공, 머레이 페라이어는?

지난 30여 년 동안 독주회는 물론, 전 세계의 모든 주요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며 수많은 음반을 발매한 피아니스트 머레이 페라이어는 모름지기 21세기를 대표하는 피아니스트 10인에 들 정도로 대단한 실력가입니다.


스페인 계 유대인인 부모가 미국으로 이주하여, 1947년 뉴욕에서 태어났습니다.
네 살 때 부모님을 따라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구경을 갔는데, 그 다음날 어제 들은 주요 아리아들을 노래 부를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겨우 네 살의 나이로 피아노 건반 앞에 앉게 되었습니다.


1972년 리즈 국제 콩쿠르(The Leeds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 )에 우승하면서 전문가로서의 커리어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페라이어는 지금까지 세 번의 그래미 상(Grammy Awards, 1989/1999/ 2003)과 네 번의 그라모폰 상(Gramophone Awards, 1995/1997/2001/2003)을 받았으며, 이 중에서 특히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음반은 빌보드 차트(Top 10 Billboard Classical Chart)에 연속 15주나 오르는 등 음악애호가들의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전성기 때인 1990년대 초반, 그리고 다시 2006년 엄지손가락 뼈의 이상으로 인해 두 차례에 걸쳐 대수술을 받았습니다.
피아니스트로서는 사형선고와 같은 고난이었지만, 다시 재기하여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그 동안 받은 수많은 상 중에서 전설적인 피아니스트 클라우디오 아라우 기념 메달 (2000)을 비롯하여, 2004년 3월 영국 여왕이 내리는 최고 영예의 훈장( an honorary KBE by Her Majesty The Queen of England)을 받은 것은 음악인으로서 큰 자부심을 가질 만한 것입니다.


현재 영국의 아카데미 오브 인 더 필즈(The Academy of St. Martin in the Fields)의 상임 지휘자이면서 동시에 피아니스트로서 활약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는 영국 로열 아카데미와 로열 컬리지의 명예교수이며, 리즈 대학으로부터 명예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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