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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자녀양육9> 감사하는 삶

오늘 아침 딸의 편지를 다시 꺼내어 읽었다. 딸이 중학교 다닐 때 헬로우 키티 편지지에 정성스럽게 쓴 것인데, 내용은 아빠의 생일을 축하한다는 인사와 함께 아빠에게 감사하는 이유 여덟 가지다.

아빠가 45살이 되던 해에 딸이 써서 전해준 편지인데, 제목은 “아빠의 80번째 생일축하.” 호적상의 생일과 진짜 생일이 왜 다른지, 그리고 음력 생일을 어떻게 양력으로 계산하는지를 설명해주었더니, 헷갈리니까 그냥 80번째라고 했던 것 같다. 그 후로도 몇 차례 더 가르쳐주어야만 했다. 실제로 태어난 날과 법적인 생년월일이 거의 2년이나 차이가 나다 보니 본인 조차도 헷갈릴 때가 있다.

참고로 집에서는 음력으로 되어있는 진짜 생일을 양력에 맞추어 여름에 생일상을 받고, 밖에서는 운전면허증에 있는 생일에 따라 봄에 축하인사를 받는다. 생일이 둘이 되다보니, 설명하기가 조금 성가시고 듣는 사람들이 헷갈린다고 하기는 하지만, 축하를 일 년에 두번씩 받는 장점도 있다.

딸이 쓴 편지의 내용은 대충 이렇다. 첫째, “최고의 아빠가 되어주셔서 감사해요.” 그리고 괄호 안에 “하나님은 빼고”라고 덧붙여 놓았다. 둘째, “훈계해주셔서 감사해요.” 그런데 따옴표 안에 lectures라고 쓴 걸 보니 아마 “잔소리해주셔서 감사해요라”고 번역하는 게 더 맞을 것 같다.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잔소리하시는 거 알아요. 그래서 감사해요.” 셋째, “보호해주셔서 감사해요.” 괄호 안에는 not overly라고 쓰고, 스마일 표시를 그려놓았다. 과잉보호가 아님을 알고 있다는 의미리라. “안전하게 지켜주시기 위해 그러시는 거 알아요. 많은 애들이 자기들을 돌봐주는 좋은 부모님이 없는 것을 봐요.” 넷째, “나를 인내로 대해주셔서 감사해요.” 이 부분을 읽을 때는 언제나 가슴 한 구석에서 찡한 감정이 솟아오른다. “내가 다루기 힘든 애라는 거 알아요. 미안해요.” 다섯째, “믿어주셔서 감사해요.” 여섯째, “공부시켜주셔서 감사해요.” 일곱째, “살 수 있는 집을 주셔서 감사해요.” 여덟째, “모든 것을 감사해요.” 그리고는 가족이 자랑스럽고, 자랑스러운 딸이 되겠다는 내용으로 편지를 마무리지었다.



간단한 편지지만 읽을 때마다 행복하다. 그래서 사무실 책꽂이에 두고 가끔 꺼내 읽는다. 딸이 지금 이걸 보면 유치하다고 버리라고 하겠지만, 오래오래 간직할 생각이다.

오늘은 11월 24일에 맞을 감사절을 생각하며 읽었다. 딸의 편지를 읽으며, 사소한 것들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감사를 표현하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이고, 행복하게 하는 일인가를 생각해봤다. “행복은 감사 속에 있고, 감사는 만족 속에 있으며; 만족의 나무에 감사의 꽃이 피고, 감사의 꽃에서 행복의 열매가 열린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맞는 말이다. 매일매일이 감사절이면 매일매일 행복할텐데....

1621년 가을, 미국으로 건너온 소수의 청교도들이 농사를 지어 천신만고 끝에 첫 수확을 거두었다. 거두어 놓고 보니 겨울을 지낼 양식이 부족했다. 그 동안에 혹독한 추위와 인디언들의 습격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고 양식을 약탈 당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추수한 곡식을 아무리 절약한다 해도 앞으로 일 년을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들이 추수한 햇곡식을 단에 쌓고 감사의 예배를 드렸다. 그것이 오늘 우리가 지키는 추수감사절 예배의 시작이었다. 그들은 그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아름다운 감사의 본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청교도들의 본을 기억하면서 우리의 삶을 살펴보면, 우리가 흔히 잊고 사는 계명들이 있다. 그것은 바로 “사랑”의 계명과 “감사”의 계명이다. 우리는 소극적인 계명들은 중요하게 여기면서 적극적인 계명들은 소홀히 여기며 생활하고 있다. 예를 들어서, “도둑질하지 말라”나 “살인하지 말라”하는 계명을 어기면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될 것이라고 생각해서 중요하게 여기지만, “사랑하라” 또는 “감사하라”하는 계명은 가볍게 여길 뿐만 아니라 심지어 잊어버리고 산다.

우리 모두가 감사하는 마음을 회복하면 우리 사회가 얼마나 행복할까. “날 구원하신 주 감사”라는 노래에 이런 가사가 있다. “길가의 장미꼿 감사/장미꽃 가시 감사/따스한 따스한 가정/희망 주신 것 감사/기쁨도 슬픔도 감사/하늘 평안을 감사/내일의 희망을 감사/영원토록 감사해.” 이 노래는 어거스트 스톰(August L. Storm)이 1891년에 스웨덴어로 발표한 것인데,1931년 칼 백스트롬(Carl E. Backstrom)이 영어로 번역하고, 수년전 문정선 목사가 한국어로 번역했다. 감사의 범위를 “범사(everything)”로 정해준 성경구절들(엡 5:20; 살전 5:18)이 생각나게 하는 노래이다. 우리 모두가 크고 작은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이 세상이 얼마나 행복할까.

아들과 딸이 어렸을 때는 감사의 계절을 맞으면 식탁에 둘러앉아 감사의 내용을 서로 나누기도 했었는데, 아이들이 대학을 가고 사회에 발을 들여놓게 되면서, 지난 몇 년 간은 그럴 기회가 없었다. 아이들이 고집을 부려 가끔 속이 상할 때도 있기는 했지만, 한 지붕 밑에서 전적으로 엄마 아빠에게 의지하고 생활하며 예쁜 짓을 하던 그때가 그립다. 아이들이 손으로 쓴 감사편지를 받을 기회가 또 있었으면 좋겠다. 올해는 아빠가 먼저 아이들에게 감사의 뜻을 표현해볼까 생각 중이다.

DBU 김종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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