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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 했다'고?

세상이 변하면서 가치관도 변하고 삶의 덕목도 바뀌나보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 했다' '이제 열심히 살지 않기로 했다'와 같은 책이 인기라고 한다. 자극적인 제목으로 독자의 흥미를 끌고 싶은 마케팅 전략일 수도 있지만, 최선을 다하고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는 '진인사 대천명(盡人事 待天命)' 같은 문구를 책상머리에 써 붙여 놓고 열심히 사는 것이 최고인 것으로 알고 살아 온 세대로서는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열심히 살 필요가 없다는 것인가. 열심히 살지 않아서 다행이고 열심히 살아서 후회된다는 말인가.

물론 책을 쓴 사람의 의도나 그런 책을 읽고 위안을 얻으며 재충전의 기회로 삼는 독자의 심정을 짐작 못 하는 건 아니다. 그저 앞만 보고 죽기 살기로 열심히 살다 보면 어느 날 문득 가슴을 파고 드는 공허함이나 인생 헛 산 거 같은 허탈감 같은 감정을 누군들 느껴보지 않은 사람이 있으랴. 그러니 조금 덜 열심히 살면서 취미생활도 하고 여행도 다니고 여유를 가지며 쉼이 있는 삶을 살아가자는 뜻이라는 걸 왜 모르겠는가.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해외에서 몇 달 혹은 1년을 살다 오는 풍조가 유행이라는 소식도 들린다. 우리 시대에는 상상조차 못하던 일이다. 팍팍하고 힘든 현대사회에서 힘들고 지친 사람들에게 '일단 내려놓고 쉼의 시간을 가져라, 그래도 된다'라는 달콤한 말은 공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그래. 나만 힘든 게 아니었구나. 나만 다 내려놓고 쉬고 싶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낀 게 아니었구나.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라는 책을 소개하는 내용 일부분을 인용해 본다. "어디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지 모를 땐 잠시 멈춰 서야 합니다. 이 책은 포기해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망하면 어쩌냐고요? 다시 열심히 살면 된다고 툭 던집니다. 인생 우습게 보는 거 아니냐는 꼰대 같은 말은 그만. 남들 속도에 맞춰갈 필요는 없었는데 말입니다. 하지만 느림을 인정하는 건 패배자가 되는 느낌이었습니다. 달려도 달려도 제자리인 기분. 모두가 노력하고 노력을 요구하는 세상에서 노력 하나로 버텨온 우리들. 노력이 통하지 않는 현실임에도 노력 말고는 딱히 할 게 없었습니다."



이러한 풍조가 확산하고 있는 데는 한국사회의 한 단면이 투영돼 있는 게 아닌가 싶어 안타깝다. 청년실업은 역대 최고수준으로 치솟아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었다. 그런 와중에도 연줄을 통한 채용비리는 만연하고 있으니 비빌 곳 없는 청춘들이 열심히 살면 뭐하나라는 자조적인 분위기를 반영해 주는 것 같아서다. 노력이 정당한 보상을 받고 열심히 사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미덕이 되는 그런 세상이 되어야 할 텐데 말이다.

아직은 '열심히 살지 않기로 했다' 보다는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학창시절 외우던 문구가 더 마음에 와 닿는다. 나도 '꼰대'가 다 되었나보다.


송 훈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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