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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영 칼럼] 동지섣달에도 피는 꽃, 팬지

[애틀랜타 중앙일보] 발행 2019/10/25  0면 기사입력 2019/10/24 14:41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 많이 듣던 노랫말. 은퇴하고, 애틀란타로 온 겨울, 동지섣달에 꽃들을 보았다. 흰색, 자주색, 노란 색의 팬지 꽃들을 보았다. 우리 콘도 입구 옆으로 팬지 꽃들이 줄지어 피어 있고, 도시의 큰 건물들 정원마다 팬지 꽃들이 피어있었다. 한국에서 봄에 보던 제비꽃 같은데, 팬지는 제비꽃 보다는 크고 꽃들의 색깔도 하양, 자주, 노랑, 분홍 다양하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영화에 비비안-리가 배역한 여주인공 이름 스카랱은 팬지에서 바뀐 것이라 한다. 소설과 영화의 배경이 애틀란타고, 두 이름 다 이곳에서 인기 있는 꽃 이름이며, 스카랱은 앙코르 아질리아의 다른 이름이고, 일년에 두 번, 많이는 세 번 피는 철죽꽃이다.

“나는 옆집에 사는 짐 버냍이요.” 노신사가 어느 겨울날 내가 집 앞에서 서성거릴 때 나타났다. 우린 인사를 나누었다. “우리 부부가 뉴욕 아들네 집에 가서 한 달쯤 있을 건데, 우리가 포치에서 기르던 팬지를 기를 생각 없소?” “팬지라! 내가 기르지요.” 짐은 팬지 화분 세 개가 든 플라스틱 통을 들고 왔다. “이틀에 한번씩 물을 주면 되요. 봄에 말라 죽거든 버리세요.” 그래서 우리 콘도 앞 포치 화분에 팬지 꽃이 자라게 되었다.

물을 줄 때 꽃들은 싱싱하게 웃어주었다. 집을 나가고 들어 올 때마다 포치에서 노란 팬지 꽃잎들이 날 좀 보소 하고 눈길을 끌었다. 얼굴을 그쪽으로 돌리면 웃어주는 노란 팬지 꽃들, 내 입가에도 미소가 전염된다. 웃음은 따스한 마음으로 연결된다. 그렇게 늦봄까지 팬지는 나와 웃음을 나누다 시들었다.

이듬해 겨울, 팬지의 미소가 그리워서, 홈디포에 가서 노란 색 팬지와 예쁜 화분을 사서, 햇빛 잘 드는 내 서재 책상 끝에 놓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화분에 물을 주며 꽃을 본다. 책상에 앉아서 눈 앞에서 보니 꽃 한 송이 피우는 과정이 신기하다. 잎사귀 사이 작은 녹색의 점, 점이 바늘처럼 길게 늘어나고, 그 끝에 작은 녹색 몽우리, 몽우리가 자라며 꽃잎으로 변한다.

“줄기가 바늘처럼 길게 자라는 것은 끝 자락의 세포가 분열하여 새 세포가 끝에 쌓이고, 그 작업 끝에 작은 몽우리를 이젠 세포 분열을 시켜서 색깔 가진 큰 꽃잎으로 키우고 꽃 술을 키운다. 씨를 만들고, 도대체 이 작은 식물이 어떻게 한 알의 씨앗에서 출발하여, 싹이 트고, 탄소동화작용으로 성장에 필요물질을 만들어 잎이 되고 꽃줄기가 되고 색깔 고운 꽃이 되고, 열매가 되고, 그렇게 수 억년을 살아 오면서 진화된 유전인자를 가지고 앞으로도 무궁무진 살아갈 이 작은 생명체의 신비.” 나는 얕은 상식을 동원해서 이해하려 하니 너무 모르고, 놀랍고, 불가사의하고 신비하다. 사람이 46염색체를 가졌듯 팬지도 많은 세월 통해 진화된 40여개의 염색체에 의해서 영원을 향해 생존한다고 한다.

“저기 팬지 꽃이 있어요, 생각하게 하는 꽃이요.” 셰익스피어의 <햄릿>의 여주인공 오필리아의 대사 중에 한 마디. “우아하고 섬세하고 부드러운 점에서는 꽃의 여왕 장미나 그 어느 꽃 보다 팬지만큼 사랑 받는 꽃은 없다”고 한 도로시 딕스, 많은 유럽의 시인들이 팬지 꽃에 대한 찬사의 시를 썼다. 동지 섣달에도 피기에 사람들의 관심을 사는지도 모른다.

세상에 많고 많은 아이들이 예쁘고 좋지만, 그 중에 몇 명, 내 손으로 안고 기른 내 아이들이 내게 사랑을 가르쳐주었듯, 세상 많은 사람들 중에 나와 나눔을 가진 나의 가족, 은사, 친구들이 나에겐 특별하고 소중하여 삶의 활력이 되듯, 많고 많은 팬지 꽃들도 아름답지만, 내가 심고, 물을 주고, 돌보며, 그들이 자라나고, 꽃이 피었다가 지는 과정을 지켜준 나의 팬지가 나에게 은밀하게 속삭인다.

“웃으세요, 감사하세요, 나 같은 것도 아득한 삶의 역사와 살아있는 것들 사이에 나의 소명이 있답니다. 산다는 것은 당신이 아는 것 보다 훨씬 큰 기능과 의미가 있답니다. 살아가는 모든 생명들은 당신이 헤아릴 수 없는 깊고 오랜 역사와 은혜가 있기 때문이랍니다. 당신은 더 소중한 존재, 살아있는 순간 마음을 여세요, 웃으세요, 감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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