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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준희 칼럼] 가을, 거문고 풍류에 젖어볼까?

선선한 바람과 청명한 하늘, 빛깔을 달리하는 나무와 서걱거리는 숲이 완연한 가을을 재촉한다. 계절의 절정을 앞둔 한낮의 따사로움은 자꾸만 이 짧은 시절을 마음껏 느껴 보라는 듯하다. 사색의 계절, 가만히 숨 고르며 풍류에 젖어볼까?

풍류는 선비를 주축으로 한 조선 지식인의 음악이다. 특별히, 현악기인 거문고가 중심이 된 풍류를 ‘줄풍류’라고 한다. 그들은 글을 읽듯 즐겨 탄 거문고를 “백악지장(百樂之丈), 가장 으뜸인 음악”으로 꼽았다. 조선 풍속화에 거문고가 빈번히 등장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이들의 거문고 사랑이 얼마나 지극했는지는 백 년 된 문짝으로 거문고를 만들어 탄 탁영 김일손(1464-1498)의 일화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그 이야기는 음악학자 송지원의 저서, 『마음은 입을 잊고 입은 소리를 잊고』에 자세히 소개되어 있는데 내용은 이렇다. “김일손은 평소 거문고를 갖고 싶어했다. 그것도 질 좋은 나무로 자신이 직접 악기를 만들어 늘 곁에 두고 타고 싶었다. 평소 다니면서 거문고 재료가 될 성싶은 나무를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썩 좋은 재료를 만났다. 그 나무를 취해 거문고를 만든 김일손은 “이 오동은 나를 저버리지 않았다”는 내용으로 금명(琴銘)을 기록해 놓았다.” 이 ‘탁영금’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거문고다. 거문고는 이렇듯, 그들과 밀접했다.

거문고의 연주는 오른손에 해죽(海竹)으로 만든 ‘술대’를 쥐고 줄을 내려치거나 뜯어서 소리를 내는 동시에, 줄을 받치고 있는 괘 위에 얹혀진 왼손은 손가락으로 줄을 짚거나 비비듯 눌러서 음을 맞추고 기교적 시김새를 만드는 방식이다. 줄을 내려칠 때 술대가 울림통에 닿는 부분에는 가죽이 덧대어 있는데, 이를 ‘대모(玳瑁)’라고 한다. 술대가 대모와 맞닿을 때 나는 소리는 타악기스러운 음색을 띤다. 그래서 현의 울림과 이 독특한 타성이 조화를 이루며 거문고 특유의 호방한 소리를 만든다. 이러한 연주법은 동아시아의 다른 지터(Zither)류 악기들과 비교할 때 거문고만의 독특한 매력을 느끼게 한다.

덤덤하고 우직한 거문고 음악은 줄풍류에서 그 정점을 이루는데 그중 한 곡이 ‘도드리’다. ‘환입(換入)’의 우리말로 ‘다시 돌아서 들어간다’는 뜻이다. 이름에서 A-B-C-B의 음악 형식을 알 수 있다. 특정 선율(B)이 반복적으로 연주되고 그 사이에 변주가 들어간다. 이런 음악 형식은 고려 때, 송나라로부터 들어온 ‘보허자(步虛子)’라는 곡에 그 연원을 두지만, 조선 시대에 이 음악은 중국음악의 색을 덜고 한국음악으로 변모한다. 도드리는 보허자에서 파생되어 반복 구(B)와 변주 구(C)를 이어 연주하는 것이 변형된 곡으로 조선 시대의 여러 고악보에 그 원형과 변화 과정이 드러난다.



조선의 지성은 거문고 연주의 지향을 음악적 기량의 완성이 아닌 정신적 수양의 도구로 인식했다. 그들이 추구한 중용의 정신은 공자가 관저를 평한 “낙이불음 애이불상(樂而不淫 哀而不傷), 즐거워하되 지나치지 않고 슬퍼하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는다”로 설명된다. 음악의 반복적 연주는 치우침을 경계하고 중심으로의 끊임없는 회귀를 학습하는 한 방편이었는지 모른다. 즉, 거문고 연주를 통한 성찰과 정진은 중용의 미를 완성해가는 조선 지식인의 음악을 통한 사색하기의 한 모습이라 할 수 있다.

도드리는 6박 장단의 완만한 빠르기와 군더더기 없는 선율로 되어 있다. 거문고 독주로 연주하는 도드리는 산책하며, 사색하며 듣기에 좋다. 이 담백한 음악에서 공자가 말한 중용의 아름다움을 가만히 탐닉해 본다. (국립국악원에서 연주한 거문고 독주 도드리는 유투브 등에서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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