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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훈 선수와 가네다 투수 두 전설의 이야기

김태원
김태원 

[워싱턴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9/10/25 15:07

2주일 전 일본프로야구계의 거성 ‘가네다 마사이치(한국명 김경홍)’가 8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20년 간 일본프로야구에서 활약하면서 깨기 힘든 기록들을 남겼다. 그 대표적인 것이 통산 400승, 전설적인 대 투수 ‘사이 영’과 ‘월터 존슨’에 이어 세계 3위에 올라 있다.

통산 5,526.2이닝을 던지면서 탈삼진 4,490개를 잡아내고 14년 연속 20승을 달성하여 일본프로야구 최고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입단 2년째인 1951년 시즌에는 신인이나 다름없는 어린 투수가 강호 한신 타이거스를 상대로 최연소 노히트노런 투수라는 귀중한 기록을 세우면서 22승을 거두었다.

1957년 주니치전에서는 투수 최고영예인 퍼펙트게임을 달성하며 최고의 전성기를 보냈다. 일본프로야구사상 세 번째이고 최연소로 기록한 퍼펙트게임이었다. 로테이션이나 마무리 투수 기용이라는 개념이 없이 완투를 해야 했던 시절에 만든 기록이므로 아마 다시는 나오지 않을 엄청난 기록인 것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롤란 라이언’이나 ‘랜디 존슨’의 기록보다 가치를 더하는 것이다. 왕정치의 홈런기록이 왕정치를 위해 지나치게 짧은 홈구장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세계기록으로 인정하지 않는 메이저 리그 사무국에서도 가네다의 탈삼진 기록은 공식기록으로 인정하여 기념 볼과 글러브를 뉴욕 ‘쿠퍼스타운 명예의 전당(Coopers Town Hall of Fame)’에 전시하고 있다.

한국계 선수로써 누구도 따라잡지 못할 화려한 성적을 남기며 일본프로야구계 ‘천황’이라는 별명으로 군림했지만 한국인들에게는 항상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왜냐하면 1959년에 일본으로 귀화했기 때문에 한국 야구팬들에게는 평이 좋지 않았다.

1962년에 장훈과 백인천과 같이 한국에 왔을 때 장훈이 열렬히 환영을 받은데 비해 자기 스스로 한국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일본으로 귀화한 개’라는 비난을 받고 신문에도 일본인이라고 소개되어서 서운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귀화한 것도 본인의 의지가 아닌 일본 법무성의 반강제적인 조치였기 때문에 더 아쉬워한 것 같다.

그래서 항상 장훈 선수와 비교되면서 도외시 됐다. 그러나 그는 “내 몸과 심장에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것은 당연하다”라며 자신이 재일교포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일본으로 귀화했지만 나름대로 고국에 대한 정이 있었다. 그는 항상 일본 야구계가 한국 야구계와 무슨 일을 계획할 때마다 “아시아 야구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한국과 손을 잡아야 한다”고 일본 야구계를 설득했다고 한다.
장훈 선수도 한때 귀화 문제로 갈등을 겪었다고 고백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을 모델로 한 “터질듯한 이 가슴을”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귀화를 안 하기로 결심했다고 당시 심경을 털어놨었다. 일본인들의 차별과 불이익을 받아가면서 운동선수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들었으면 그런 마음까지 먹었을까 싶다.

현재 일본프로야구에서 활약하는 유명선수의 20~30%가 한국계라고 한다. 일본 최초의 퍼펙트게임을 기록했던 후지모토 히데오(한국명 이팔룡) 선수도 한국계 투수였다. ‘추성훈의 귀화’는 괜찮고 가네다는 안 되는 이상한 논리와 잣대, 그렇다면 미국 시민권을 받아 귀화한 사람은 괜찮은가? 이것은 좋다 나쁘다를 떠난 어디까지나 개인의 문제라서 이렇다 저렇다 할 수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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