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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수 칼럼] 반말

“어디다 대고 반말이야.” 한국 사람들 간 대화에서 종종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우리 말을 배우는 외국인들이 어렵고 숙달하기 어려운 것이 반말과 존댓말을 구분하는 일이라고 한다. 외국인들이 이 구분을 잘 못 해 존댓말을 써야 할 자리에 반말을 하게 되면 애교로 보아줄 수도 있지만(“사장님, 밥 먹었어?”), 같은 한국인끼리는 통하지 않는다. 잘못 반말을 해서 언쟁을 벌이거나 심지어 폭행 사태로까지 발전하는 일도 있다. 몇 달 전에는 함께 술을 마시다가 반말을 했다는 이유로 상대를 때려 숨지게 했다는 신문 기사도 있었다.

‘백년을 살아보니’라는 책을 내고, 백세의 고령이 무색하게 지금도 활발하게 출판, 강연 활동을 해 언론 매체에 종종 오르내리는 김형석 교수가 있다. 내가 60여 년 전 대학교 초년생이었던 때 그분에게서 신입생 교양필수과목이던 종교 과목을 들었던 인연으로 그분 소식은 반갑고 그분에 관한 글을 보면 빼놓지 않고 읽는다.

최근에 ‘아흔두 살 할아버지가 반말을 했다, 기분이 좋았다’라는 제목의 인터넷 기사를 읽었다. 김 교수가 시내버스를 타고 가다가 두 손에 지팡이를 짚고 올라탄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했더니 그 노인이 “고마워”라고 반말을 했다고 한다. 남산 순환도로에서 그 노인과 함께 내리는 우연까지 겹쳐 잠시 함께 걸으며 그 노인의 나이를 물어보았더니 아흔둘이라고 했고 조심해서 걸으라는 김 교수의 작별 인사에 “도와줘서 고마워”라고 했다는 것이다.

“혼자 가면서 생각해 보았다. 나보다 일곱 살이나 아래인 할아버지가 나를 손아랫사람으로 대한 것이다. 약간 억울하기도 하고 손해를 본 것 같기도 했다. 어떻게 생각하면 지팡이가 필요 없는 내가 더 고맙기도 하고.”



노인들의 나이 아흔이 넘게 되면 겉으로 봐서 나이를 짐작하기 어렵다. 개인의 유전자나 일상 건강 관리에 따라 실제 나이보다 젊게 보이기도 하고 더 늙어 보이기도 할 것이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자리를 양보해 준 동년배 노인(일곱 살의 나이 차이를 젖혀 놓고라도)에게 반말을 하다니. 이 경우에 그 노인의 시력과 판단력 내지는 교양을 의심하게 된다. “고마워” 대신 “고마워요”나 “고맙습니다” 했으면 선의를 베푼 교수님이 억울하거나 손해를 본 것 같은 떨떠름한 기분은 들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전연 모르는 사람에게 쓰는 반말은 문제가 되지만, 서로 잘 알고 친한 관계에서는 반말은 오히려 정과 사랑 그리고 친근감의 표현이기 때문에 바람직한 것도 사실이다. 어쩌다 옛 고교 동창생들끼리의 모임에서 반말로 서로 야자 할 때의 즐거움은 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부모, 형제자매, 부부, 친구에게 쓰는 반말은 전래의 관습적인 격식의 벽을 허물고 서로 간 마음의 거리를 없애준다. 유교 전통이 문화의 근간인 한국에서 군신, 부자, 부부, 장유, 친구 사이의 도덕규범을 정의한 딱딱한 삼강오륜(三綱五倫)에 스스럼없는 인간성을 가미해 준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반말을 부적절하게 써서 사달이 날 수는 있어도 존댓말을 써서 잘못되는 일은 없다. 그러니까 반말은 되도록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영어에 ‘긴가민가하면, 하지 마(When in doubt, don’t!)’라는 격언이 있다. 내 개인적으로는 아무리 나보다 어리다고 해도 모르는 사람에게는 존댓말을 쓴다. 특히 나보다 한참 어린 손자뻘이라도 예외는 없다. 대학 다닐 때 우리 과 교수댁에 갔다가 그분이 초등학교 다니는 친딸에게 “오늘 숙제 없니” 하지 않고 “오늘 숙제 없나요?” 하시는 것이 몹시 새롭고 듣기에 좋았던 기억이 있다. 제자들에게 반말하시는 일도 물론 없었다.

더러는 우리말의 존댓말은 구시대의 유물이니 법을 제정해서라도 이를 폐지하자는 과격한 주장도 있다. 오랫동안 이루어진 언어 습관이 입법으로 바뀔 일도 아니지만, 적폐청산이 유행어인 요즘 세상에 존댓말도 적폐로 몰리는 것이나 아닌지 혼란스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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