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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세상] 푸이그의 아메리칸 드림

백종인 / 스포츠부장
백종인 / 스포츠부장 

[LA중앙일보] 발행 2019/10/28 미주판 20면 기사입력 2019/10/26 11:43

아직 동트기 전이다. 쿠바의 외딴 해안이다. 수상쩍은 몇몇이 꼼지락거린다. 탈출용 보트를 기다리는 중이다. 접선 시간이 지났다. 배는 나타나지 않았다. 먼 하늘부터 훤해진다. 이제 위험하다. 비밀 경찰에 걸리면 끝이다. 가이드는 벌써 도망가버렸다. 안절부절못하고 우왕좌왕. 막 포기하려던 찰나다. 뿌연 물 안개 사이로 뭔가가 보인다. 약속한 밀항선이었다. 일행 4명이 무사히 승선을 마쳤다.

그들을 태운 배는 마약 운반선이다. '란체로'라 불리는 멕시코 갱단의 쾌속정이다. 최대 시속은 70노트(약 80마일)다. 웬만한 추격은 문제없다. '혁명의 배신자'들을 태운 배는 36시간을 달렸다. (멕시코) 칸쿤 근처가 목적지였다. 이슬라 무헤레스라는 섬이었다.

도착으로 끝이 아니다. 비즈니스는 이제부터다. 쿠바 탈출에는 보통 1인당 1만 달러가 든다. 하지만 이번 고객들은 특별했다. 25만 달러에 거래가 성사됐다. 그만큼 빼내기 어려운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갱단의 거래처는 미국이다. 의뢰인은 플로리다의 에어컨 수리업자다. 라울 파체코라는 인물이다. 물론 진짜 직업은 브로커다. 쿠바에서 야구선수를 데려와, 메이저리그 팀에 소개한다. 계약이 성사되면 막대한 수수료를 챙긴다. 갱들이 그걸 모를 리 없다. 이번에 태운 건 야시엘 푸이그라는 선수였다. 쿠바 대표팀의 잘 나가는 외야수였다.

갱들은 욕심이 났다. 흥정가를 올렸다. 일행을 감금시키고, 감시를 붙였다. 문 앞에는 늘 연기가 자욱했다. 보초들이 잠을 쫓기 위해 피워댄 마리화나 탓이다. 하루에 몸값을 1만 달러씩 올렸다. 살벌한 위협은 덤이다. 마체테(나무 자르는 큰 칼)가 언제 팔을 내려칠 지 모른다.

플로리다는 비상이 걸렸다. '푸이그 구하기' 플랜 B가 작동됐다. 또다른 갱단을 구했다. 탈출선의 라이벌 조직이었다. 총격전 끝에 구출에 성공했다. 일행은 멕시코시티로 갔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랍스터를 주문했다. 생전 처음 먹어보는 요리였다.

푸이그 탈출은 1급 뉴스였다. 메이저리그 팀들이 모두 신경을 곤두세웠다. 간단한 트라이아웃 캠프가 열렸다. 여러 구단이 사람을 급파했다. 그 중에 한 팀이 LA 다저스였다. 마이크 브리토라는 수완좋은 스카우트가 왔다.(박찬호 중계 때 포수 뒤에 있던 중절모 쓴 인물이다) 정확히 사흘 뒤다. ESPN에 브레이킹 뉴스가 떴다. '다저스, 푸이그와 7년 4200만 달러에 계약.' 당시까지 쿠바 출신 최고액이었다.

천사의 도시는 열광했다. 야생마의 플레이에 매료됐다. 2013년은 최고의 해였다.

그러나 아직 아니다. 해결해야 할 문제가 남았다. 바로 멕시코에서 '보물'을 뺏긴 란체로들이다. 그들은 수시로 사람을 보냈다. 원정 경기 숙소(호텔)에도 나타났다. 방문을 두들긴 뒤 한마디를 남긴다. "카르텔에서 돈을 원한다." 자동소총 총구를 옆구리에서 느낀 적도 있었다.

또다시 용역이 필요했다. 보호자(에어컨업자)는 어디론가 SOS를 쳤다. 몇 주가 지났다. 칸쿤에서 짤막한 뉴스 하나가 나왔다. 조직간 총격전 소식이었다. 사체 하나가 발견됐다. 탈출선 보스였다. 온 몸에 총알이 13발이나 박혀있었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났다. 얼마 전 여름이다. 푸이그가 SNS에 사진을 올렸다. 손바닥만한 성조기를 든 환한 표정이었다. "위대한 기회를 주신 신께 감사드린다." 시민권 선서를 마친 직후였다.

물론 아메리칸 드림은 공짜가 아니다. 법원 서류로 드러난 내용들이다. 푸이그는 브로커(에어컨업자)에게 모든 수입의 20%를 지급해야 한다. 그것도 평생 끝나지 않는 종신 계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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