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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광장] 초심, 열심, 그리고 뒷심

고동운 / 전 가주공무원
고동운 / 전 가주공무원 

[LA중앙일보] 발행 2019/10/28 미주판 21면 기사입력 2019/10/26 11:45

거울 볼 일이 별로 없다. 출근길 머리는 아내가 손질해 주고 면도는 손으로 만져 까칠한 곳을 골라 전기면도기를 들이민다. 어쩌다 한 번 거울을 보곤 마주 보는 낯선 영감의 모습에 깜짝 놀라곤 한다.

마음은 아직도 서툰 기타 솜씨로 어니언스의 '편지'를 노래하던 21살이다.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다들 그런 마음으로 사는 모양이다. 얼마 전 가족들이 밥을 먹는 자리에서 40대 초반의 큰 아들이 하는 말이 '마음은 21살'이라고 한다.

도종환 시인은 그의 에세이 '첫 마음'에서 '초심, 열심, 종심(뒷심)'을 이야기한다. 매사에 가장 중요한 것은 '초심'이다. 그래서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하지 않았나.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나머지는 도로아미타불이다. 시작만 해 놓고 열심히 하지 않으면 그건 '작심삼일'이다. 뜻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이 흔들릴 때 사람들은 초심으로 돌아가라고 한다. 꿈을 갖고 첫 발을 내딛던 때의 열정으로 살아가라는 의미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노력한 만큼의 보상이 주어질 뿐이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끝이 어설프면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다소 부족함이 있어도 잘 마무리하면 그래도 이루었다는 성취감을 갖게 된다. 이때 필요한 것이 뒷심이다. 시즌 내 타의 추종을 불허하며 내셔널리그 최고의 승률을 자랑하던 다저스도 뒷심의 부족으로 플레이오프 1회전 탈락이라는 불명예를 얻지 않았던가. 마라톤은 마지막 스퍼트에서 승패가 갈린다고 한다.

나는 대한민국 역대 정권도 모두 처음에는 나름 잘해 보겠다는 초심으로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어느 정권은 열심이 부족했고, 다른 정권은 뒷심이 부족했다. 국민이 외면하면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민심이 틀렸다고 고집을 부리다가 모두들 훗날 심판을 받았다.

12장의 두툼한 두께로 시작했던 달력도 이제 두 장 남았다. 빼곡히 적어 놓았던 이런저런 결심과 약속들도 달력 종이와 함께 떨어져 나갔다. 새 달력을 받으며 나와 또는 타인과 맺었던 초심들을 나는 초록의 봄과 뜨거운 여름 동안 얼마나 '열심'으로 살았나.

여행은 가는 길보다는 돌아오는 길이 늘 빠르다고 느끼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서머타임이 끝나고 나면 낮은 짧아지고 퇴근길 어둠은 빨리 찾아온다. 1년 중 11월과 12월은 유난히 빨리 지나가는 느낌이다. 마지막 뒷심이 필요한 시간이다.

달력은 12 장을 다 쓰고 나면 새 것이 주어지지만 안타깝게도 석양에 들어선 내 인생은 다시 주어지지 않는다. 과연 나는 얼마나 많은 초심을 잊어버렸나. 남은 초심은 잘 챙기며 열심히 살았던가. 이 무렵이 되면 잠시 반성의 시간을 갖게 된다.

끝이 있다는 것은 새로운 시작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마음은 21살' 초심을 잊지 말고 뒷심을 내자. 금년에 못 이룬 물질적인 목표는 내년을 기약하면 된다. 지금은 내게 상처 준 이들과 화해하고 내가 아픔을 주었던 이들에게 용서를 구해야 할 계절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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