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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난장] 한국의 미역, 일본의 다시마

같고도 다른 두 나라 문화
바다를 넘어 서로 섞이다

양국서 즐겨 먹는 명란젓
현실 외교선 찾을 수 없나

한국인과 일본인이 즐겨 먹는 미역과 다시마를 채취하는 배와 도구들을 보고 있는 관람객. 이번 전시는 내년 3월 일본에서도 같은 내용으로 열린다. [사진 국립민속박물관]

한국인과 일본인이 즐겨 먹는 미역과 다시마를 채취하는 배와 도구들을 보고 있는 관람객. 이번 전시는 내년 3월 일본에서도 같은 내용으로 열린다. [사진 국립민속박물관]

신영균·고은아가 주연한 김수용 감독의 영화 '갯마을'(1965)에는 바닷가 아낙네들이 멸치를 삶는 장면이 나온다. 거친 풍랑에 남편을 잃은 아낙들에게 멸치는 생계를 이어가는 주요한 버팀목이다. 한국 리얼리즘 영화의 수작이라는 평가답게 '갯마을'은 비릿한 바다 내음과 함께 일생을 쓸쓸히, 혹은 강하게 살아가는 옛 여인들의 정한을 보여준다. 반세기 전 영화지만 지금에도 전혀 낡아 보이지 않는다.

20세기 초 새우젓 장수 풍속화.

20세기 초 새우젓 장수 풍속화.

약방의 감초처럼 쓰임새가 많은 멸치를 우리가 삶아 먹기 시작한 건 그리 오랜 일이 아니다. 근대 개항 이전 조선 사람들은 멸치를 삶지 않고 바로 햇볕에 말려 사용했다. 삶아 말린 멸치는 개항 이후 일본인이 들여왔다. 한국에 온 일본 어민들은 경남 남해안에서 멸치를 말려 일본으로 가져갔다. 국·찌개 맛을 돋우는 삶아 말린 멸치가 한국인 입맛을 사로잡은 것은 주로 1945년 광복 이후다.

멸치를 보면 동아시아 해산물 유통의 단면을 읽을 수 있다. 구한말 조선과 일본 어민 사이엔 충돌도 있었다. 1896년 일본 어민이 경남 거제에 멸치 가공시설을 무단 설치하려고 하자 갈등이 높아졌다. 그때 조선인과 일본인이 맺은 서약서 한 장이 눈길을 끈다. 길에서 여자들에게 음담패설을 하지 말 것, 어업을 통해 서로 상업할 것, 마을 앞에서 옷을 벗지 말 것, 한국인과 일본인이 싸우지 말 것 등이다. 당시 일본인이 부녀자 앞이나 동네 근처에서 옷을 벗고 다니는 일이 많아 다른 지역에서도 문제가 됐다고 한다.

서울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특별전 '미역과 콘부'(내년 2월 2일까지)는 바다를 매개로 한국과 일본 문화의 닮은 점, 다른 점을 두루 조망한다. 한·일 양국 연구진이 지난 3년간 함께 준비한 자리다. 그 어느 때보다 사이가 틀어진 두 나라의 생활문화를 돌아본다는 점에서 시의성이 크다. 굳이 위기의 양국 관계를 떠올리지 않아도 된다. 좋든 싫든 문화는 어제도, 오늘도 서로 섞이며 나아가기 마련인 까닭이다.



미역과 콘부(昆布·다시마)는 한국과 일본의 바다 먹거리를 대표한다. 바다 밑에서 자라는 비슷한 해초이긴 하지만 문화적으론 양국의 선호도가 갈라진다. 한국인이 밥상·의례·선물 등 일상에서 미역을 즐기는 반면 일본인 식재료에 단골로 올라가는 게 다시마다. 특히 다시마.가다랑어 등을 우려낸 '다시(맛국물)'가 없는 일본인의 식탁은 상상하기 어렵다. 젓갈이 안 들어간 한국인의 김치와 비슷하다고나 할까.

전시장에 들어서면 한국과 일본의 생선가게 주인이 관객을 맞는다. 비록 영상물이긴 하지만 서울 서대문 영천시장과 일본 지바현 어물전 사장이 나란히 나와 양국의 해산물을 소개한다. 영천시장 아줌마가 "오늘 조기가 좋아요"라고 인사를 건네자 지바현 아저씨가 "오늘 저녁 연어 어떠세요"를 권한다. 실제로 양국 국민이 즐기는 생선에서도 차이가 났다. 일본 연구자의 현장 조사에 따르면 한국 시장에선 조기·고등어·가자미·홍어회 등이 상시로 팔리는 반면 일본에선 연어·다랑어·가다랑어 등이 항상 진열돼 있다. 바다 환경의 차이가 가장 큰 이유다.

해산물 교류의 대표 선수로는 명란젓을 들 수 있다. 지금은 우리 바다에서 거의 사라진 명태의 알로 만든 명란젓을 일본인이 먹기 시작한 건 20세기 초부터다. 광복 이후 후쿠오카로 돌아간 일본인이 조미액에 명란을 담가 만든 일본식 '멘타이코'를 개발하면서 명란에 대한 일본인의 수요가 급증했다. 한국식 젓갈 문화와 일본식 다시 문화의 만남인 셈이다. 일본 지바현 해녀들이 제주 해녀들의 무명 잠수복 제작법을 배워 1970년대까지 사용한 반면 제주 해녀들은 70년대 이후 일본 해녀들의 고무 잠수복과 물안경을 쓰게 됐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이번 전시에는 자료 450여 점이 나왔다. 밥상으로 치면 꽤나 푸짐하다. 해산물, 어로기술, 바다신앙 등을 주제별로 살핀다. 그간 무심히 넘겨온 양국의 바다 문화를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문화는 흘러야 제맛이라는 명제를 새삼 깨닫는다. "시대·문화의 맥락을 이해해야 오해를 줄일 수 있다. 이번 전시는 이웃과 이웃이 손잡은 일상 연구의 좋은 사례다. 좋은 사례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아야 한다"는 오창현 민속박물관 학예사의 말에 동의한다. 오늘 열리는 이낙연 총리와 일본 아베 총리의 '10분+α' 면담이 양국의 동맥경화를 푸는 좋은 사례가 될 수 있을까. 고기를 낚는 미끼라도 됐으면 하는 마음이다.


박정호 / 한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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