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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고뿔이어서 다행이다

겨울답지 않게 포근한 날씨가 이틀간 이어졌다. 마치 봄날같이 따스하여 가벼운 옷차림으로 길을 나섰다. 조금만 빨리 걸어도 땀이 날 만큼 기온이 높았다. 일을 다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목이 간질간질하며 헛기침이 났다. 삼사월이 되면 꽃가루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체질 때문에 알레르기인가했다. 책을 펴들고 읽고 있는데 온몸이 노른해지더니어깻죽지부터 통증이 시작되었다. 어렴풋이 생각나는 익숙하지 않은 느낌이었다.

건강하다고 자만심을 가지면 큰일 난다고 어머님은 누누이 말씀하셨다. 남들 다 걸리는 감기를 나만 안 걸려 미안하다고 떠벌리고 다니던 지난 몇 년이 생각나서 웃음이 났다. 드디어 참 오랜만에 걸리는구나.

기침은 더욱 심해져서 할 때마다 가슴에 통증이 느껴졌다. 머리는 돌을 얹어놓은 듯 무거워졌다. 열이 높아지더니 심장이 뛸 때마다, 이마 주위로 피가 몰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곳저곳 온몸에 쑤시는 곳이 많아지니 나도 모르게 “끙” 소리를 내게 되었다. 어차피 바이러스를 제거하는 약은 없으니까 그저 해열제만 먹고 혼신을 다해 이겨내야만 한다. 그렇게 일요일 아침 미사 끝내고 집에 와서는 누워버렸다. 정신은 말짱한데 몸은 꼼짝도 못 하였다. 그저 누워서 비몽사몽 하며 밤새워 뒤척였다. 간헐적으로 기침은 계속되었고, 열은 좀처럼 내리지 않았다.

정말 오랜만에 겪어보는 몸의 변화가 신기했다. 온몸이 뭉쳐졌다 부서지며 가루가 되어버리는 꿈도 꾸며 새벽까지 반복되는 지독한 앓음이 정신까지 혼미하게 할 때쯤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기침도 잦아들고 열도 내리고 고통도 크지 않았다.



감기란 말은 18세기부터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원래 쓰던 우리말은 고뿔이다. 고뿔이라는 말은 ‘코에서 불이 난다’란 뜻을 지닌 재미난 우리의 표현이다. 구태여 우리말을 버리고 감기란 말을 즐겨 쓴 것은 중국의 것을 흠모하던 조선 양반들의 잘못이다.

가게 앞 주차장을 둘러싸고 언성 높인 다툼은 매일 일어나는 일상이다. 가게주인의 주차장 사수는 목숨 걸고 싸우는 도사견의 공격처럼 집요하다. 가끔 그 도가 지나침이 이해하기 힘들긴 하다. 그렇게까지 안 해도 장사에 지장이 없을 터인데 말이다.

나의 몸 상태를 감기에 걸렸다 해도 괜찮다. 하지만 난 ‘고뿔에 들었다’라고 하고 싶다. 그리 중요하지도 않은 주차장 파킹 문제로 목숨 걸듯 덤벼드는 사람도 있다. 그러면 잊혀 가는 우리말 지키는 것처럼 중요한 일에 난 무엇을 해야 할까?

아직도 강대국이지만, 우리가 더는 선망하며 따를 중국은 없다. 고조선이 자신들의 식민지였다는 근거 없는 역사의 왜곡. 한인을 마치 자국의 소수 민족쯤으로 생각하는 국가주의. 군사력을 앞세운 으름장까지 말이다. 하나 더 있다. 대한민국 국민 그 누구도 중국의 미세먼지를 선호하지 않는다.

고뿔은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아픔은 인내를 키운다는 것. 건강할 때가 축복이라는 것. 그리고 우리 것이 소중하다는 것이다. 가슴 아리도록 좋은 우리말 표현들을 우리는별생각 없이 그냥 버리고 있다. 재채기하면 하는 “God bless you!”나 독일어로 하는 “Gesundheit”처럼 우리말에도 ‘개치네쒜’란 순수한 우리말이 있다. 그냥 지나가는 고뿔이어서 다행이다. 고뿔이 우리말이어서 다행이다. ‘에취!’ ‘개치네쒜!!’ ‘고맙소!!!’


고성순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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