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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가 있는 아침] 단장가(斷腸歌)

왕방연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 님 여의옵고

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저 물도 내 안 같아야 울어 밤길 예놋다





-청구영언





이렇게 슬픈 노래가 또 있을까?

숙부 세조에 의해 왕위에서 쫓겨난 노산군은 유배지 영월에서 사약을 받는다. 그때 집행의 책임을 진 이가 금부도사 왕방연이다. 그는 고을에 도착했으나 머뭇거리면서 감히 들어가지 못하였고, 마침내 입시(入侍)하자 열일곱 살의 어린 상왕이 관복을 차려입고 나와 그가 온 이유를 묻는다. 그러나 그는 대답하지 못하였다.

마침내 단종이 승하함으로써 김종서와 사육신, 금성대군 등의 죽음, 생육신의 저항을 남긴 조선 초기 최대의 비극 계유정난은 막을 내렸다. 그 절정의 순간을 집행하고 돌아오던 왕방연은 자신의 마음을 어찌하지 못하고 밤에 냇가에 주저앉아 흐느껴 운다. 물소리도 그의 마음과 같다. 울며 흐른다.

이 일이 있었던 후 왕방연은 관직을 그만두고 중랑천가에서 배나무를 키우며 살았다. 단종의 제삿날이면 수확한 배를 올리고 영월을 향해 절을 했다고 한다. 유배 시 목말라했던 단종에 대한 애모(哀慕)였다. 이것이 먹골배의 기원이다, 왕방연의 생몰 연도는 전해지지 않고, 그가 남긴 노래만 민중에 의해 전승되었다.


유자효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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