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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맛과 멋] 무밥의 즐거움

중국 우한 지방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우한폐렴)로전 세계가 충격 속에 빠져 있다.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그 예방책에 난리굿이다. 서울의 한 친구는 약속이 신세계 백화점으로 잡히자 그 지역은 중국인들이 많이 왕래하는 곳이라 무서워서 참석하지 않겠다는 바람에 단톡방에서 그 톡을 본 여기 사는 나까지 웃겼다. 웃긴 했지만, 오늘날에 있어 이유 모를 신종 질병의 발생은 우리 모두에게 대단히 위협적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욱더 건강에 집착하게 되고, 그 집착 때문인지 먹거리에 대한 관심과 미식이 뜨거운 화두가 되었다.

미식까지는 아니지만, 워낙 음식 미학에 조예가 깊었던 아버지 덕분에 나도 먹는 걸 좋아하고, 식탐도 많다. 식탐이 많은 사람은 음식 만들기도 좋아한다. 만들기만 좋아하면 문제가 아닌데, 그로서리에 갈 때 꼭 필요한 것만 사겠다 굳게 결심하고 가도, 신선한 식재료나 세일 상품을 보면 절대 그냥 지나치지를 못하는 게 문제다. 얼마 전에 배추와 무를 한 박스씩 산 것도 그런 연유였다. 그날따라 배추도 싱싱하고 무도 좋은데, 배추가 한 박스에 7.99불, 무가 5.99불, 김장 세일이었다. 덜컥 일을 저지르고선, 그다음엔 벽을 치며 후회했지만, 그런 일은 내게 있어 다반사다. 배추는 김치도 담고, 국도 끓이고, 고갱이를 빼서 쌈으로도 먹고, 겉대들은 살짝 데쳐서 된장에 무쳐 질리도록 먹었다. 무 역시 동치미도 담그고, 익힌 나물을 만들어도 먹고, 생채도 해 먹고 무밥도 몇 번 해 먹었다. 이젠 배추나 무 얘기만 들어도 신물이 난다.

하지만 무밥에 재미가 들려서 좋은 점도 있었다. 재료가 있는 대로 톳 밥도해 먹고, 우엉 밥도 해 먹고, 곤드레 밥도 해 먹게 된 것이다. 톳 밥은 의외로 구수하고 부드럽게 입 안에 착착 감겨서 내 베스트 메뉴에 올랐다. 이렇게 나물을 잔뜩 넣고 나물밥을 해서 양념장에 비벼 생선 한 토막이나 고기 몇 점 구워 먹으니 간단하고 훌륭한 식사가 되었다. 심플하게 먹기의 달인 도이요시 하루(일본 요리연구가)의 밥과 국에 채소 장아찌 한 가지인 ‘일즙일채(一汁一菜)’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한 해 여름, 열무김치에 꽂혀 여름 내내 열무김치로 냉면과 비빔밥만 만들어 먹다가 영양실조에 걸렸던 게 생각난다. 혼자 먹자고 하루 세끼 장만하기가 힘도 부치고 귀찮기도 한데, 생선이나 고기 중 하나가 첨가된 나물밥이야말로 대단히 편리하고 지혜로운 음식이 아닌가 싶다.

제임스 비어드의 말이 아니더라도 음식은 세계 모든 인류의 공감대이다. 식욕은 인간의 기본적인 본능이니 말이다. 살기 위해선 먹어야 하고, 먹는 즐거움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숭고한 쾌락이다. 오죽하면 톨스토이가 신은 인간에게 먹을 것을 보냈고, 악마는 요리사를 보냈다고 했을까.



음식을 통해서 우리는 그 사람을 알고, 그 시대를 알고, 민족과 국가의 역사까지도 가늠해볼 수 있다. 공자가 음식을 신선한 것만 가려먹으면서도 적절한 양을 넘기는 법이 없었다는 얘기는 유명하다. 그때 공자가 육회를 먹었다는 기록도 있는데, 그 후 중국인들에게서 회 먹는 문화가 사라지고, 오히려 우리나라에서 활성화되어 육회는 물론 생선회, 갖가지 채소 회까지 발전해서 현재의 회 문화로 이어졌다는 얘기는 흥미롭다.

새해 건강법은 무밥에서 답을 찾은 것 같다. 식재료는 절대 많이 사지 않고 그날그날 먹을 것만 살 것. 나물밥을 만들어 세끼를 꼬박꼬박 챙길 것. 그렇게 건강한 식생활을 하면 우한폐렴쯤이야 한 방에 팍! 부숴버릴 수 있을 것이다.


이영주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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