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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산책] 꽃짐을 진 당나귀

“일과 춤을 섞고 사랑한다 말하며/ 농부들은 씨뿌리고/ 시인들은 노래하며/ 학자들은 생각하고/ 애인들은 사랑하는 땅”이라는 시구를 다시 읽었다.

이 시구는 정현종 시인의 시 ‘술잔을 들며’의 일부다. 이 시구에서처럼 일과 춤과 사랑이라는 세 가지는 우리 삶의 구성 요소들일 것이다.

‘일’이라는 말이 함의하는 고용과 실업의 상태, 부유함과 가난함, 그리고 오랜 노동으로 인한 몸의 고통과 질병과 노쇠함이 우리에겐 있다. ‘춤’이라는 말이 함의하는 행복과 환희가 우리에겐 있다. 또 춤을 통해 불행과 슬픔에서 벗어나려고도 하므로 춤이라는 말에는 해원(解寃)의 뜻도 들어 있다.

마찬가지로 ‘사랑’이라는 말에는 아끼는 마음뿐만 아니라 사랑의 상실도 함께 함의하고 있다. 다시 생각해보아도 일과 춤과 사랑은 우리 삶의 거부할 수 없는 세 가지 형편일 것이다.



가깝게 모셨던 한 스님이 투병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 전 찾아뵌 적이 있었다. 때마침 스님은 절에 잠깐 머무르고 있었다.

스님을 뵙기 위해서는 마스크를 쓰고 손을 씻고 이만치 떨어져 앉아야 했다. 면역력이 많이 떨어진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스님은 창백했고 살이 빠졌고 기력이 많이 약해져 있었다. 낮은 목소리로 나를 반겨 맞아주었다. 삼킬 수가 없지만, 몸과 대화하면서 몸이 받아들이는 음식을 찾고 있다고 했다. 병이 위중하다는 것을 어느 날 갑자기 알게 되었지만 몸도 마음도 가보지 못한 새로운 길에 조금씩 적응해가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스님은 벽에 걸려있는 그림 한 점을 소개했다. 푸른 달밤에 당나귀 한 마리가 등에 가득 짐을 진 채 서 있는 그림이었다. 그런데 그 당나귀가 가득 지고 있는 것은 꽃 무더기였다. 당나귀는 노랗고 붉은 꽃을 가득 지고 있었다. “무거운 짐을 한가득 지고 있지만 당나귀는 그것을 꽃짐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예요. 당나귀가 딛고 있는 땅 좀 봐요. 화가가 저길 처음에는 벼랑 끝으로 그렸는데, 나중에 활짝 핀 들꽃들을 더 그려 넣어 벼랑을 불룩한 둔덕으로 바꿔줬어요.”

스님의 얘기에 따르면, 스님이 이 그림을 걸어뒀더니 스님에게 자신들의 근심을 상담하러 온 사람들이 우연히 그림을 보고선 좋아했다고 한다. 스스로 진 불행과 고통을 꽃짐이라고 바꿔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날 스님을 뵙고 나오면서 나도 꽃짐을 진 당나귀 한 마리를 함께 데리고 나왔다.

고통과 불행이 없는 사람은 없다. 한때 진흙탕 길을 걷지 않는 인생은 없다. 내가 고통의 수렁에 깊게 빠져 있었을 때 “아주 죽으라는 법은 없어요”라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내게도 있다. 그리고 스스로 고통을 겪는 때도 있지만, 다른 사람의 불행을 통해서도 우리는 고통을 경험한다. 타인의 고통이 나의 고통이 되기도 한다.

정호승 시인은 시 ‘해우소’에서 타인이 겪는 고통을 내가 대신 감당하겠다고 말한다. “나는 당신의 해우소/ 비가 오는 날이든/ 눈이 오는 날이든/ 눈물이 나고/ 낙엽이 지는 날이든/ 언제든지/ 내 가슴에 똥을 누고/ 편히 가시라”라고 말한다. 해우소는 근심을 푸는 곳이다. 절에서 변소를 달리 이르는 말이다. 근심을 진 사람을 향해 내게 그 근심을 다 내려놓고 가시라고 시인은 말한다. 세상의 고통을 바라보는 대비(大悲)의 마음이 이 시에는 담겨 있다. 우리에게 사랑의 심안(心眼)을 눈뜨게 하는 시라고 하겠다.

일과 춤과 사랑이 우리 삶의 큰 조목들이고, 또 그 조목들이 함께 함의하고 있는 회피하고 싶은 고통들의 내용도 우리 삶의 일부분일진대, 그 고통들을 뿌리로 삼아 잎과 꽃을 피우고 빛과 향기를 얻는 일은 우리의 몫이다. 마치 한 마리 당나귀가 무거운 짐을 지고서도 그 짐을 꽃짐이라고 여기듯이.


문태준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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