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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하의 삶이 있는 풍경] 슬픈 자화상

봄비가 밤새 내렸다. 천둥·번개를 거느린 봄비가 대지를 촉촉이 적시며 봄을 깨우고 있다. 자연계의 봄은 성큼성큼 다가오지만, 인간계는 봄은 느끼지도 못하고 공포에 사로잡혀있다. 보이지도 않는 실세에 허둥대고 있다. 들불처럼 번지는 공포와 불안 그리고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혼돈에 빠졌다. 봄이 시작되려는 순간을 막아선 빨간불, 그냥 넋 놓고 파란불이 켜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 말고는 할 게 없다. 선과 악의 경계가 아니다. 준비와 방심의 한계도 아니다. 끝을 알 수 없는 암흑의 터널에 갇혀있는 것 같다.

늘 이맘때면 설렘과 희망으로 부풀어있었다. 무채색 자연은 제 빛깔로 물들고 바람과 공기는 순하고 착했다. 햇볕은 따뜻했고 넉넉했다. 자연의 소리는 귀가에 맴돌고 눈에는 꽃들이 창골하고 향기는 달콤하고 새소리는 청명하고 분주했었다. 그러나 2020년 봄은 그런 기분으로 맞을 자신이 없다. 꽃밭과 공원은 문을 닫아 버렸고, 사람들은 집 밖을 지옥처럼 여기고 안에 둥지를 틀었다. 밖은 이미 지옥으로 변했다. 아니 사람이 사람을 경계하는 현상으로 번졌다. 이젠 바이러스보다 사람이 무서워졌다.

어렵게 구한 KN95 마스크 한 장으로 1주일을 버티고 있다. 더 구하고 싶어도 어디에도 없어 포기했다. 이런 세상은 처음이다. 할 말을 잃었다. 큰 그림으로 보면 아무것도 아닌데 눈앞에 떡하니 버티고 서 있는 공포엔 기가 죽을 수밖에 없다. 무엇 하나 맘대로 되는 게 없다. 그냥 속수무책이다. 더 두려움을 주는 것은 확진자인데 무증상으로 활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에겐 무증상이지만, 누군가에게 치명상을 줄 수 있는 것이 바이러스인 것이다. 그 경계가 보이지 않고 있기에 더 가증되는 혼돈이다.

달라스에서만 30년을 살았다. 90년대 초기부터 오늘까지 한눈에 꿰고 있는 이민자다. 한인사회의 흥망성쇠를 보아왔다. 그 사이에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태어났다. 그리고 누구는 흥하고 누구는 망했다. 큰 그림으로 보면 작은 반점에 불과하지만, 그런 점들이 모여 그림은 완성된다. 그 그림이 화려한 채색화가 되느냐 아니면 어둡고 칙칙한 반점으로 채워진 무채색 그림이냐는 시대를 관통하는 시간에 달려있다. 지금의 시간은 가늠 할 수 없다. 초유의 사태이기 때문이다. 아마 지나고 나면 폐 깊숙한 곳에 고통의 흔적이 남아있으리라는 확신 뿐이다.



마스크를 한 얼굴이 낯설다.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던 모습이다. 그러나 적응해야 한다. 바이러스가 인간계로 넘어와 적응하고 생존하는 방법을 터득했듯이 인간도 지금의 상황을 이기는 방법을 익혀야 한다. 사회적 거리 두기도 실천하고 비즈니스 피해도 극소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 그게 답이다. 지금은 그 어떤 방법도 없다. 살아남아서 내일을 꿈꾸는 것 밖에 달리 방법이 없는 2020년 봄이다. 햇살이라도 청명하게 밝고 따뜻했으면 좋겠다.

글·사진 김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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