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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자녀양육 칼럼] 딸과 남친의 방문

딸이 주말에 남자친구를 데리고 온다고 한다. 때가 됐으니 언젠가는 결혼하겠다고 이야기할 것이라고 막연히 기대하고 있었다. 다른 집 딸들이 결혼하는 것을 볼 땐 내 딸은 언제 할지 궁금했다. 멀리 떨어져 혼자 사는 것보다 누군가가 옆에 있으면 마음이 더 놓일 것 같아서 빨리 결혼하기를 바라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딸이 남친과 함께 결혼허락을 받으러 온다는 말을 들으니 마음 속에 여러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딸이 태어날 때를 생각하면 마음 한 구석이 애잔하다. 우리 가족이 한국에서 돌아올 때 딸은 집사람의 뱃속에 있었다. 그해 여름은 특별히 힘든 계절이었다. 군복무를 마치고 다시 학생으로 돌아왔으니 경제사정이 말이 아니었다. 프드스탬프를 받으면서 학교에서 청소를 했다. 교회의 마음씨 좋은 교인들로부터 생활에 필요한 도움을 받았다. 상황이 상황이니 만치 매월 산부인과를 찾아가는 것은 엄두를 내지 못했다.

정말 기적적으로 그해 가을부터 대학교에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유학생의 신분으로 월급을 받을 수가 없었다. 비자변경을 신청하고, 가을학기 등록을 취소하고, 프드스탬프와 교회의 도움에 힘입어 생활을 꾸려 나갔다. 드디어 출산을 두 달 앞두고 공립병원을 찾아가서 진찰을 받고, 다음 달에 학교와 교회 식구들의 기도 덕분에 딸이 건강하게 태어났다. 그후 얼마 되지 않아 취업비자가 나왔고 밀린 월급을 받으니 생활에 약간의 여유가 생겼다.

딸이 태어나자 우리 가정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아들 혼자 있을 때와 확연히 달랐다. 늘 조잘거리고, 재롱 부리고, 떼쓰고, 잘 웃고, 잘 우는 딸 덕분에 집안에 활기가 돌았다. 딸의 학교친구와 이웃친구들도 자주 찾아왔다. 학생회 활동, 테니스 시합, 그림 그리기 대회 등등 학교를 찾아갈 기회도 더 많아졌다. 엄마도 아빠도 오빠도 딸의 고집을 꺾지 못할 때가 많았다. 딸이 없었더라면 우리 가정은 훨씬 썰렁했을 것이다.



딸은 무슨 일이든지 적극적이고 악착같았다. 어디서 저렇게 똑순이 같은 애가 나왔을까 궁금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대학입학을 준비할 때도 입학할 학교를 미리 정해 놓고 거기에 맞춰 한 번의 SAT로 진학준비를 끝낸 아들과는 달리 딸은 여러 학교에 입학원서를 제출하고 시험도 여러 번 봤다. 부모의 설득과 회유에도 불구하고 굳이 보스턴에 있는 학교에 입학하겠다고 우겼다. 결국 학비를 스스로 해결하기로 하고 본인이 원하는 학교에 입학을 했다. 학비의 80%는 장학금으로 해결하고, 학비 20%와 생활비는 학자금 융자와 아르바이트로 충당하며 3년만에 졸업을 했다. 그리고 졸업과 동시에 직장생활을 시작했고, 직장일을 하면서도 융자를 빨리 갚겠다며 주말 아르바이트를 했다.

직장인으로서 아르바이트, 교회활동, 그리고 개인생활을 다 잘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안쓰러워 보여서, 무리하지 말고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하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경제적으로 윤택하지 않은 가정환경이었지만 건강하게 성장해서 자기를 개발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딸이 자랑스럽고 감사할 뿐이었다.

작년부터는 같은 직장의 서부 지사에서 일을 계속하며 경영학 석사과정을 공부하고 있는데, 남자친구를 만나 함께 교회에 다니고 있다. 보스턴에 있을 때는 한국사람과는 절대 결혼하지 않겠다고 말했었다. 비싼 차를 타고 몰려다니며 술 마시고 담배 피우고 욕하는 한인 유학생들을 너무 많이 봤고, 자신의 성격이 한국인 남자들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우리 내외도 딸을 사랑하고 딸이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인종이나 국가의 배경이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한국사람과의 결혼을 강요하지 않았다. 그런데 한인 남친을 사귄다는 것이 의외이고 기뻤다.

딸의 선택을 신뢰하면서도 과연 어떤 친구를 사귀는지 내심 불안했다. 지난 가을 딸의 남친을 잠깐 봤다.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별로 없어서 그 친구에 관해 많은 것을 알아보지는 못했지만 착하고 성실해 보여서 마음이 놓였다. 딸을 사랑하고 딸이 사랑한다니 더 이상은 바라지 않기로 했다.

두어 주 전에 남친에게서 받은 반지를 낀 딸의 사진에 “We're engaged (우리 약혼했어요)”하는 제목이 달린 것을 페이스북에서 봤고, 며칠 전에는 “She said yaaas (그녀가 예라고 말했어요)”라는 글귀 밑에서 딸과 남친이 찍은 사진을 인스타그램에서 봤다. 또 지난 주말에는 딸과 남친이 혼전상담을 받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지금 다니고 있는 교회의 목사님으로부터 앞으로 6주 동안 상담을 받게 된다고 한다.

그 사진들을 보는 순간 그리고 혼전상담을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결혼허락 받으러 온다더니 이미 본인들은 결정을 했구나 하는 서운한 마음이 살짝 들었다. 부모의 허락을 받은 후에 그렇게 하는 것이 바른 순서가 아닌가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미 지난 수개월 간의 대화를 통해 두 사람의 결혼을 암시적으로나마 허락했던 것이 사실이고, 본인들은 마음을 정했음에도 불구하고 결혼허락을 받으러 오겠다고 하니, 자신들의 결정보다 부모의 허락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결혼을 반대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딸과 약혼자가 허락을 받으러 올 필요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허락한다고 말하기 전에 꼭 한가지 약속을 받고 싶은 것이 있다. 그것은 같은 신앙을 끝까지 유지하겠다는 약속이다. 같은 신앙을 가지고 있으면 다른 가정문화, 다른 성격, 다른 생각을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부로서 경험하게 될 문제들을 건설적인 방향으로 함께 해결해 나가려면 같은 신앙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딸이 결혼을 약혼한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고민이 된다. 딸의 친구를 대하듯이 해야 할지, 장래의 사위를 대하듯이 해야 할지. 영어로 대화화면 편할 것 같기도 하지만 그렇게 하기는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주말이 기대가 된다. 그러나 저러나 아들은 언제 여자친구를 데리고 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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