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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평화가 있기를

“평화를 빕니다”하고 주위에 있는 교우들과 인사를 했다. 가볍게 고개를 숙이거나 가까이 있는 분들과는 악수도 했다. 나도 모르게 웃는 얼굴이 된다. 한 주일 잘 보내고 새로 다시 한 주를 시작하는데 이것처럼 좋은 위로가 또 없다. 누군가 나의 평화를 빌어주고 나 역시 그 누군가에게 평화가 깃들기를 바란다.

그런데 며칠 전 미사 때부터 평화의 기도가 사라졌다. 허전한 마음이 들었다. 보이지도 않는 미생물이 사람들의 목숨을 위협하고 있다. 중국에서 시작되었다는 이유 하나로 아시아인들은 따가운 시선을 받는다. 중국인들 나무라던 한국인들도 같은 처지가 되어버렸다. 이제는 유럽은 물론이고 미국까지 전파되는 추세이다. 평소에는 손 세정제를 쓰는 사람들을 보면 참 유난을 떤다고 생각했다. 어느 정도 세균 접촉은 오히려 우리 몸에 유익하다는 근거 없는 믿음을 가졌다. 그래서 몇 달 전 뜬금없이 손 세정제를 사온 아내를 나무랐던 기억이 난다. 이제는 그저 아내의 선견지명이 놀라울 뿐이다.

지금은 사순절의 시기이다. 죽음을 앞둔 예수의 사십일의 가슴앓이이다. 그의 제자들은 그분이 지상에서 누리는 낙을 실현해주실 것으로 믿었을 것이다. 이런 제자들의 희망을 저버리고 예수는 십자가에 매달렸다. 가장 가깝던 베드로도 세 번이나 그를 부정했다. 그의 기적과 진리의 강론을 듣고 감동하던 군중들은 등을 지고 그를 사형하라고 목 놓아 소리쳤다. 눈에 보이는 것만 믿거나 믿고 싶은 것만 보는 것이 우리 인간의 본성이 아닌가?

전염병을 무서운 속도로 전파한 사람들의 중심에는 한 사이비 집단이 있다. 이 단체는 성경을 마음대로 왜곡 해석해 잘못된 신앙을 가르치는 기업이다. 그들의 잘못된 교리는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풍요를 약속한다. 예수는 단연코 세속적인 풍요, 물질적인 만족을 말한 적이 없다. 신약 성경은 온통 사랑 이야기다. 가족이나 주위 사람들은 물론, 소외되고, 버림받고, 가난하고, 멸시당하는 이웃마저 사랑하라고 가르친다. 예수를 믿는 신앙인으로 언제나 부족하다고 느끼고 죄인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이런 사랑 실천에 게으름을 피우고 있어서이다. 비록 세속적인 신앙으로 가정과 사회에 악의 중심이 되어버린 그들이지만 연민이 간다. 북한의 공산주의는 분명히 잘못된 독재의 산물이지만, 그 체제 안에서 신음하고 고통받는 우리 민족들을 미워할 수 없듯이 말이다.



죽음을 이겨낸 부활의 의미는 무엇일까? 로마 제국의 서슬 퍼런 권력에 벌벌 떨며 사태를 지켜보던 제자들 사이로 부활한 예수는 모습을 보인다. 그 자리에 없던 도마는 제자들의 말을 믿지 않는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손의 못 자국을 만져보고, 옆구리에 난 상처에 손가락을 넣어 확인해야 한다고 길길이 날뛴다.

전염병을 제공한 중국인들, 엄한 사이비 종교인들, 이 틈을 타서 이익을 취하는 악덕 업체들, 애써도 소용없다고 정부를 욕하는 우리들의 모습과 비슷하다. 땀으로 상처 난 얼굴에 반창고를 붙여가며 쉬지 않고 환자를 돌보는 간호사들, 의료진들, 전국에서 대구로 모여와 자원봉사하는 구급대원들 그리고 기부하는 여러 사람의 훈훈함. ‘아름다움이 결국 세상을 구원한다’던 도스토옙스키의 말처럼 이 세상이 아직은 살만하다. 그래서 우리는 기필코 이겨낼 것이다. 혼돈에 쌓인 도마와 제자들에게 다시 나타난 예수는 불신을 잠재우고 말한다.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그리고 반복하였다.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고성순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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