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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배우며] 새해에는 웃는 연습을 하자

미국 미스 유아대회에 출전한 인형처럼 예쁜 어린 여자아이가 생글생글 웃으며 텔레비전 인터뷰하는 모습을 전에 보았다.

“웃는 모습이 너무 예뻐요, 웃는 연습도 하나요?” 기자가 물었다.
“그럼요. 이 웃음은요 내 트레이드 마크거든요. 대회에 나가거나 인터뷰를 할 때는 요렇게 웃음을 걸어요.”
그렇게 말하며 여자아이는 마스크를 귀에 걸치듯이 웃음으로 입꼬리가 올라가는 끝을 잡고 귀에다 거는 시늉을 한다.
“잘 때는 그 웃음을 벗어 놓나요?”
“이제는요, 버릇이 되어서 늘 거기 있어요.”



내 얼굴은 웃는 얼굴도 아니고 기쁜 얼굴도 아니고, 삶의 살얼음 위를 걷는 심각한 얼굴, 찌그러지고 화가 난 얼굴, 피곤한 얼굴, 좀 슬픈 얼굴이라고 알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게 하는 일련의 증거들이 있었다.

닥터 알렉산더 교수는 강의 첫날 그의 반 학생들의 사진을 찍었다. ‘미스터 김, Say cheese.’라고 나를 지목했다. 유학 와서 첫 강의실에서였고 내가 유일한 외국인이었다. 옛날 사진들이 거의 없어 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 졸업사진들 속에 내 얼굴 사진을 살펴보았다. 모두 심각한 얼굴, 근엄한 표정들이었다. 결혼사진에도 심각한 표정이었다.

고국 방문을 간 여름, 광화문 지하도 출입구가 바라보이는 자리에서 친구를 기다리며, 지하도 출구에서 꾸역꾸역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 얼굴을 본 적이 있다. 출구의 계단 위로 나오는 얼굴들이 햇빛 조명을 받았다. 많은 얼굴 중에 명확한 패턴이 보였다. 중년과 노년들은 한결같이 찡그리거나, 근엄하거나, 화나거나, 지친 모습에, 얼굴 모양도 여기저기 부딪쳐 쭈그러진 모양이지만, 젊은 학생들, 특히 여학생들의 얼굴은 잔잔하고 웃음이 어리고 쭈그러진 흔적이 없었다.

가난과 어려움의 세월은 흘러갔지만 우리들의 표정 속에 상처의 흔적이 쌓여있었다. 나의 얼굴도 지하도에서 나오는 노년들 얼굴과 같다. 나야말로 가난과 어려움의 상처를 많이 받으며 생존한 대표적인 한국 노인이니까.

건강 장수의 최고의 명약은 웃음이란 글들이 쏟아졌다. 세계적인 웃음 돌풍의 선구자 중에 노만 쿠신스(Norman Cousines; 1915-1990)가 있다. 그가 척추 마비에 걸려 병원에서도 더는 손 쓸 수 없을 때, 코미디물을 빌려다가 보면서 웃었다. 고통으로 돌아눕지도 못하고 잠들지 못하던 그가 코미디를 보면서 한바탕 웃고 나면 통증이 기적처럼 가시고, 잠을 잘 수가 있었다. 먹고 자고 웃고, 웃고 자고 먹고. 그렇게 계속하다 보니 기적이 일어났다. 그의 마비 증상은 저절로 고쳐졌다. 병원에서 포기한 병이 웃음으로 치료되었다.

그는 그 경험을 논문으로 써서 권위 있는 미국 의학저널에 실었다. 그는 세터데이 리뷰의 편집장, 하버드의대 이사, 예일 의과대학에서 명예 의학박사 학위, UCLA 의과대학 교수, ‘웃음이 최고의 명약’이란 책을 포함해 많은 베스트셀링 책의 저술, 암 병동마다 ‘유머 마차’라는 프로그램을 만든 일로 유명하다.

여러 나라에서 웃음이 삶의 스트레스를 낮추고 건강을 증진한다는 연구 결과가 쏟아져 나왔다. 유머 감각이 신랑감의 조건이 되고, 웃음 치료사들이 나타나고, 웃음 전도사들이 나타나고, 웃기는 코미디가 인기를 얻었다.

인도 한 마을 사람들은 아침에 모여 보건체조를 하듯이 웃는 연습을 하는 모습이 텔레비전에서 보였다. 리더에 따라 박장대소, 낄낄낄, 하하하, 키득키득 웃었다. 몸을 뒤틀며 웃었다. 억지로라도 웃으면 행복 호르몬이 나오고 건강하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내 표정에 가난한 시대, 고난의 시대를 견디며 만들어진 표정 속에 웃음이 없고, 근엄하거나, 노한 표정, 비판과 불만, 피곤한 표정, 의심하며 조심하는 표정이 깊게 자리 잡고 있다. 고생하며 살아온 것도 억울한데, 남은 생도 그 버릇 때문에 병들어 불행하게 산다면 더 억울하다. 남은 생을 웃으며 사는 방향으로 바꿀 수 있을까? 웃음 연습을 하자!

웃는 연습을 해보았다. 화장실에서 세수하고 나서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볼 때 웃는 연습을 해봤다. 입꼬리를 귀 쪽으로 늘려보았다. 눈썹 사이의 주름을 펴 보았다. 매일 일부러 웃었다. 눈살이 찌푸린 모습을 펴서 웃어보았다. 양미간의 주름을 문질러 주었다. 눈썹 사이의 근육에 긴장이 풀린다. 확실하게 엄숙한 얼굴보다 웃는 얼굴 인상이 좋다. 기분이 맑아지며 따스해졌다.

방실방실 웃는 어릴 때 귀여운 손녀의 사진을 사무실 게시판에 붙여 놓고 아침마다 출근해서 웃는 얼굴을 바라보며 맑은 웃음에 전염되어 나도 웃었다. 그래 오늘 하루도 웃으며 시작하고, 웃을 일을 찾아보며 웃으며 살도록 노력하자.

억울한 일 당하고, 최선을 다해도 실패하고, 자식들이 바라는 대로 안 돼 근심하다, 거울을 보며 문득 웃어야지 하고 내 얼굴을 보니, 야 넌 가짜야! 네 속은 화나고, 귀찮고, 고민하며 거울 앞에서 웃는 얼굴은 가짜야, 하는 내면의 소리가 들린다.

웃으며 살자는 의욕은 목표지향적으로 나를 인도하고, 자기 예언적인 효과를 가져올 것이니, 좋은 방향으로 운전대를 틀었다. 여전히 새 길은 험하겠지만 말이다.


김홍영 / 전 오하이오 영스타운 주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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