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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인생이 다 그런 거지”

건강하게 편안하게 잘 살고 있을 때, 남의 불행을 엿보며 무심코 내 뱉던 말. 인생이 다 그런 거지 뭐 괜찮아, 잘 되겠지, 잊어버려 하곤 획 돌아섰다. 무책임하게 건네던 말들이 뾰족한 촉을 세우며 내 가슴을 향해 달려 올 태세다. 글쎄다. 내게 불어 닥친 불행 앞에서 과연 아무렇지도 않게 ‘인생이 다 그런 거지 뭐’라고 툭 던질 수 있을까.

얼마 전 본인의 죽음을 예상하고 차근차근 필요한 사항을 준비하던 작은오빠가 밝은 톤으로 들려 준 한마디에 위로를 느끼며 안심했던 기억이 새롭다.

“나이든 사람 떠나고 새로운 생명 태어나고 순환이 잘 되어야 살맛 나는 세상이지, 늙어 죽지 않고 계속 살겠다고 욕심 부리면 세상이 어찌 되겠냐. 걱정 마. 팔십이면 충분히 내 몫은 산 거야. 삼십 전에 떠난 큰오빠, 육십오세에 가신 아빠, 환갑에 아쉽게 이별한 엄마. 단명한 가족력에 비해 너나 나나 오래 살고 있는 거잖아. 감사하지. 그러니 나 떠나는 것 슬프다 생각하지 마라.”

확실한 날짜와 시간은 몰랐어도 예상 되었던 이별이라 슬픔이란 생각은 없다. 생일까지 견디고 팔십세를 꽉 채운 닷새 후, 편안히 눈 감았다는 오빠친구 병원장님의 카톡 메시지를 받고, 훅 치고 들어오는 펀치에 울음이 터진다. 이별에 따라오는 눈물은 필요한 과정일 뿐이다.



마지막 정리. 곧잘 입으론 재잘대면서 실천에 옮기려 하면 막막해진다. 무엇부터 정리해야 하나? 옷장부터 열어 본다. 옷가지야 두고 떠나면 아무나 처리할 수 있는 아이템이다. 전혀 중요하지 않는데 내겐 제일 먼저 정리해야 할 것들이란 압박이 크다.

엄마도 작은오빠도 자신이 입고 갈 최상의 의상을 준비했던 걸 보면 중요할 수도 있겠다. 또 뭐가 있지? 영정 사진. 작은오빠 사진은 최고로 근사한 모습을 준비해서 액자에까지 넣어 보관되어 있었다 한다.

취업용으로 마련한 명함판 사진 찾아 와서, 나 죽거든 영정사진으로 쓰라고 농담을 남긴 큰오빠는 만 28세로 떠나며 그렇게 영정사진을 준비했다. 엄마는? 아빠는? 특이 사항이 없다.

은행 통장과 현금과 우편환 등 꼼꼼하게 정리되어 남은 사람이 쉽게 마지막 마무리 할 수 있도록 남겼단다. 낯설다. 멀쩡하게 살아 있는 동안에 오빠 자신의 사후를 온전히 꾸며 놓는다는 행동이. 그러나 나도 해야 한다.

내 돈이니 내가 써야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빠져 나오자. 애초에 내 것 아닌, 하나님 것이라 생각하며 쓰고 살기를 잘했다 싶다. 그럼에도 잘 정리해서 인수인계할 마땅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하늘에 지혜를 구해야 할 것 같다.

병자년 2020 12월 23일. 마지막 남았던 내 편은 떠났다. 결국 ‘인생이 다 그런 거지 뭐’라던 작은오빠의 음성으로 시린 가슴 덥혀 본다. 이 겨울이 유난히 춥지 않기를 소망하며 오빠와의 카톡 대화를 열어 읽고 또 읽고 사진들을 클릭클릭 크게 늘리며 본다.


노기제 / 통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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