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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책과 함께하는 365일

커피를 내리려는데 머신이 말썽이다. 오늘 아침엔 특별히 카프리치오를 골라 넣었는데 커피가 나오지 않는다. 계속해서 버튼을 누르자 머신은 거의 비명을 지르며 항거한다. 이리저리 살펴보다 물그릇이 비어있는 걸 발견했다. 물을 채워 넣지 않은 것이다. 내 사랑 카프리치오는 틈바구니에서 찌그러져 출산도 못 하고 만신창이가 되었다.

나의 첫 번째 커피 머신은 이런 내 횡포를 견디다 못해 머신이기를 포기하고 고철이 되는 쪽을 택했다. 그렇듯 아쉬운 이별을 경험했기에 이번 머신에는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는데 또 실수했다. 종이 넣지 않고 ‘프린트 누르기’, 밤새워 글 써놓고 ‘세이브’ 안 하고 잠자기 등 건망증이 수그러들 기미가 없다.

작년 새해 초에 다섯 가지를 결심했다. 하루에 한 시간 이상 걸을 것. 커피를 하루에 두 잔으로 제한할 것. 사흘에 책 한 권을 읽을 것. 일주일에 시 한 편씩을 외울 것.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할 것. 올해엔 한 가지를 더 추가했다. 건망증을 컨트롤할 것.

제아무리 최고의 에스프레소 머신이라도 마중물을 받지 않고 결과물을 내어놓을 수는 없다. 그건 마치 독서를 하지 않고 글을 써 보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글쓰기에는 다독, 다작, 다상량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그 가운데서도 독서는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흔히 가을을 독서의 계절이라고 하는데 1년 365일이 모두 책을 읽기 좋은 날이다.

다음은 많이 써 보는 것이다. 또렷한 기억보다 희미한 볼펜 흔적이 낫다고 한다. 구슬 세 가마가 옆에 놓여 있어도 꿰지 않으면 목걸이가 아니다. 글쓰기를 많이 연습하지 않고 타고난 재주로 책상에 앉기만 하면 좋은 글이 술술 써지는 사람은 없지 싶다.

다음으로 많이 생각하고 헤아린다는 다상량은 비단 글을 쓰는 이에게만 요구되는 항목은 아니다.

세 가지 외에 좋은 글을 쓰려면 살아 온 환경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경험이라고 할 수도 있고 배경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어릴 때 우리 집안에는 문학을 전공한 이가 없었다. 위로 3대 조를 거슬러 올라가도 시인, 문필가, 국문학자, 언론 계통에서 일하는 조상은 안 계셨다. 고향이 서울이어서 향토색 짙은 문학작품을 쓸 수 있는 배경도 아니었다. 집안엔 흔한 동화책 하나 없었는데, 손에 잡히는 것은 오래된 잡지의 한 면이든 날 지난 신문 한쪽이든 처음부터 마지막 줄까지 읽었다.

학교에 웅변대회라는 것이 자주 있었다. 주제는 주로 ‘반공’이나 ‘방일’이었는데 대회에 출전하는 친구들의 원고를 대신 써 주곤 했다. 입상하면 교내 식당에서 팥도넛을 하나씩 사 주었다. 책상을 꽝 내리치며 열변을 토하던 그리운 친구들, 지금은 어느 곳에서 당당하던 갈기를 접고 있을까.

새해가 독서하기 좋은 해가 되기를 기대한다.


박 유니스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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