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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네트워크] ‘탈진기’가 필요한 사회

사회의 역동적인 에너지는
역사 발전의 원동력이지만
소모적 갈등의 반복은 안돼

탈진기(脫進機)라는 이름을 듣고 어떤 기능을 하는지 알아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영어로는 ‘escapement’인데 역시 의미를 이해하긴 어렵다. 인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발명 중 하나지만 아는 사람은 드물다.

탈진기는 톱니바퀴의 회전속도를 일정하게 하는 장치다. 사람들은 정확한 시간을 재는 장치를 고안하기 위해 수천 년간 애썼다. 흐르는 물이나 태양의 변화를 측정하던 시대가 종지부를 찍은 건 16세기에 이르러서다.

물의 흐름은 수량에 따라 불규칙하고, 태양의 움직임 역시 계절에 따라 달라진다. 외부 변화에 상관없이 일정한 운동을 찾아낸 건 갈릴레오 갈릴레이다. 그는 진자운동의 등시성(等時性·같은 길이의 진자는 추의 질량에 상관없이 같은 주기 운동을 한다는 원리)을 발견했다.

진자는 균일한 운동을 하지만 지속시간이 짧았다. 도시의 탑이나 건물에 달려있던 시계를 개인의 소유로 만들고 싶은 욕구도 커졌다. 금속 가공기술이 발달하면서 태엽 장치가 등장했지만 한계는 있었다. 잔뜩 감긴 태엽의 힘(토크)은 갈수록 약해진다는 것.



난제를 해결한 게 탈진기다. 태엽의 힘을 왕복운동으로 바꿔주는 조속기(調速機·regulator)에 탈진기를 물리면 균일한 회전운동으로 바뀐다. 여기에 여러 개의 톱니바퀴를 연결하면 시·분·초를 보여주는 오늘날의 기계식 시계가 된다.

탈진기가 위대한 발명인 건, 큰 힘이건 작은 힘이건 일정한 운동으로 바꿔줄 수 있어서다. 1시간에 3600번, 1년이면 6300만번 넘게 태엽의 힘을 견뎌야 하는 탈진기는 내구성도 뛰어나야 한다. 스위스산 고급 기계식 시계가 비싼 건 이런 기술력이 담겨 있어서다.

문득 우리 사회에도 ‘탈진기’가 필요한 게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해 봤다. 역동적인 사회의 에너지는 분명 역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다. 하지만 서로 다른 방향의 에너지가 맞부딪히기만 하거나, 소모적인 갈등만 반복된다면 역사의 추동력은 힘을 잃게 된다.

이 거대한 에너지를 냉정하고 예측 가능한 역사의 추동력으로 전환할 탈진기를 꿈꿔본다. 그 역할은 지식인의 것일 수도 있고, 시민의 몫일 수도 있다. 어쩌면 사회 구성원 모두의 책임이기도 하다.


이동현 / 한국 중앙일보 산업1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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