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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로그인] ‘악플이 무플보다 낫다’는 착각

[LA중앙일보] 발행 2020/03/07 미주판 14면 기사입력 2020/03/06 19:26

한때 댓글을 많이 썼다. 초창기 블로그 서비스 시절이니 십수년 전이다. 유명 포털에 블로그를 개설하고 신기한 마음에 열심히 글을 쓰고, 찾아온 다른 블로거와 의견을 주고 받고 답방하고 그러다가 일상의 소소한 얘기도 나누는 친구가 되곤 했다.

동등한 블로거끼리의 교류인 만큼 나누는 댓글은 정중했다. 아이디로 등장하지만 체감 온도는 실명과 똑같았다. 얼굴 없이 문자로 교류하다 보니 오히려 어투, 사용하는 어휘가 내 캐릭터와 인격을 결정했다. 오해도 쉬웠다. 실제 대화보다 더 세심한 주의가 필요했다.

뉴스 댓글도 쓰기 쉽지 않았다. 포털 같은 큰 사이트에서 익명의 아이디라 해도 내 의견을 온 천하에 내놓는 건 조심스러웠다. 누구도 나라는 걸 모르지만 아무도 모르는 건 아니다. 내가 알고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월드와이드웹(WWW)의 초현실적인 글로벌 인터넷망이 머리 속에 마구 그려지면서 지구촌의 수천만 한글 사용자들에게 내 한마디가 전달된다는 상상만으로 충분히 위압됐다. 쓸 때 그랬지만 읽는 댓글도 무게를 실어 읽고 마음에 담았다. 한마디 짧은 말도 내내 지워지지 않았고 그것이 무한한 기쁨을 때로는 아픔을 주었다.

인터넷이 상용화되고 게시판이건 블로그건 메신저건 수다 떨듯 댓글 한마디 안 써본 사람 없는 요즘이 됐다. 이제 댓글은 개개인의 독립된 생각을 내놓는 공간이 아니라, 좌파 우파, 진보 보수, 여당 야당, 친 트럼프 반 트럼프 같은 이른바 자신의 지지 성향이나 집단이 정한 ‘프레임’의 논리를 매뉴얼 읊듯 반복 게시하는 대자보로 전락한 인상이다.

뉴스에서 어떤 토픽을 어떤 시각으로 다루었는지, 뉴스가 다루고 있는 팩트가 무엇인지는 노관심. 제목만 읽고, 후루룩 훑어내리다가 꽂힌 한마디 단어만 취하고 여기에 똑같은 프레임 댓글을 줄줄이 달아붙이는 행태가 유행처럼 흔하다. 대부분이 극단적인 찬양 아니면 무자비한 공격이다.

한글 사용자들이지만 한국 내 사이트와는 유저층이 다른 미주중앙일보 웹사이트의 뉴스 댓글도 현상은 마찬가지다.

사이트 유저의 70% 이상이 25~54세, 액티브한 연령대는 35~44세 사용자다. 사회적 이슈의 경중을 가릴 수 있고, 뉴스의 가치판단이 가능하고 무엇보다 뉴스 댓글의 중요성과 파장을 잘 아는 사용자들이다. 댓글을 한번 쓰려면 회원 인증을 받아 가입하고 로그인을 해야 한다. 그런 절차를 거치고 시간 들여 입장한 뉴스 페이지 댓글에 건설적인 비판보다 욕설이 난무하는 건 매우 안타깝다.

‘악플이 무플보다 낫다’는 자조 섞인 선언이 유행인 때도 있었다. 욕을 하고 비아냥대고 보이지 않는 삿대질을 거리낌없이 해대는 악플이라도 관심이 있으니 가능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다.

하지만 총체적 난독증이 유행병처럼 흔한 이 시절에는 그마저 지나간 착각이다. 뉴스를 읽고 포인트를 이해하고 ‘악플’을 달았다기엔 동문서답도 프로급이다. 무엇보다 악플은 비판적인 댓글을 칭하는 말이 아니다. 칭찬하는 댓글은 선플이고 야단치는 댓글은 악플인 게 아니다.

비판적인 댓글은 오히려 선플의 영향력을 발휘한다. 찬양 일색인 댓글은 차라리 독이 되는 악플일 수도 있다. 묻지마 욕설에 다짜고짜 비아냥인 댓글을 쓰며 개인의 분노는 해소될지 모르지만, 그런 용도로 쓰기에 기사 한줄에 들어가는 시간과 노력이, 그 기사를 웹에 올리고 유지하고 관리하는 노고와 비용이 너무나 아깝다. 사회적 리소스의 낭비다.

이제 좀 그만 쓰자 악플, 그리고 많이 쓰자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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