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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고] 국익 우선의 정치가 살길이다

지난 29일은 한국인들에게는 잊을수 없는 날 '국치일'이다.

109년 전인 1910년 8월29일 일본이 강압적으로 한국과 체결한 '한일병합조약'을 공표함으로써 대한제국은 망하고 일제의 식민지가 됐다.

우리 한국인들은 그때 조약체결의 전권위원이었던 이완용을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라고 부른다. 그러나 대한제국의 최고 통치 책임자는 당시 순종황제였고 또 그 위에 태황제 고종이 있었다.

그렇다면 500년 역사의 조선을 망하게 한 원인과 책임은 누구에게 있나. 간접적 원인은 국방과 국가안보까지 상국인 중국에 맡기고, 부국강병 정책 대신 문약에 빠져 권력투쟁과 당쟁만 일삼던 당시 국가 지도자들에게 그 원인과 책임이 있다.



하지만 직접적인 원인은 19세기 말 당시 고종이 국제정세를 바로 파악하지 못하고 '줄'을 잘못 선 것에 있었다. 그때 세계 질서 헤게모니를 쥔 패권국은 영국과 미국 등 해양 세력이었다. 그런데 고종은 도전세력인 러시아 쪽에 줄을 섰다. 정동의 러시아 공관에 1년간 들어가 있었던, 이른바 '아관파천'이라는 전례없는 사태까지 연출했었다.

고종은 심지어 러시아에게 조선의 보호국이 돼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부동항(겨울에도 얼지 않는 항구)을 찾던 러시아는 조선의 원산항은 물론, 심지어 부산, 진해항까지도 탐을 냈었다.

그러나 영국, 미국, 프랑스 등 해양세력은 이러한 러시아의 극동 아시아로의 진출을 극력 막으려 했다. 그래서 그들은 당시 아시아의 친 서방 신흥강국으로 부상한 일본에게 조선의 '보호'를 떠맡김으로써 '북극의 곰' 러시아 세력의 조선을 통한 극동으로의 남진을 막는 방법을 택했다.

1905년의 영일동맹, 미국과 일본 간의 가쓰라-태프트 밀약 등이 나온 배경이다. 그렇게 강대국들의 인준 혹은 협조를 받은 일본은 조약 하나 체결하고, 아주 쉽게 한반도를 손아귀에 넣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한일병합 조약 체결로 대한제국은 망했다. 그러나 조선의 왕과 왕실, 종묘사직 제사는 그대로 존속이 됐다. 그것은 조약체결 때 한국 측 황실의 요청을 일본이 조건없이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한반도는 조선으로 환원됐다. 순종황제는 조선 왕으로, 고종은 태왕 칭호를 받아 왕궁에서 살았다.

한마디로 한국이 망한 책임은 그때 국가 최고 통치권자인 고종, 순종 황제에게 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고종, 순종은 왕과 왕실의 신분보장 등을 한국의 통치권과 맞바꾼 셈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상황은 구한말의 정세와 비슷하다. 세계 패권국인 미국, 그에 연결되어 있는 일본, 그리고 도전국인 중국, 그에 연결되어 있는 러시아, 그리고 그들의 비호하에 있는 북한, 이 모든 세력들이 대한민국의 안보와 정치, 경제 등 국익에 긴밀하게 관련돼 있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최근 미국의 극동아시아 안보질서의 중심축인 한미, 미일 삼각동맹의 링크 핀인 '지소미아'마저 파기했다. 국제 질서에서는 외톨이 독불장군으론 살아 남을 수 없다.

국가가 나가야 할 방향을 잘못 설정하면 국가적 비극이 초래될 수 있다. 감정이 아니라 냉철한 이성으로 국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정책과 결단이 필요한 때다.


김택규 / 국제타임스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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