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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삶] 세상에서 가장 예쁜 꽃

이슬 아기들이/ 눈을 떴다/ 달빛이 파란/ 잎새에서/ 이슬 아기의 빛나는 구슬 눈/ 이슬 아기의 빛나는 구슬 눈/ 그렇지만/ 우리 아기도/ 둥지 속 아기 새도/ 잠만 잔다/ 꼭 감은 두 눈/ 꼭 감은 두 눈/ 왜 그들은 잠만 잘까?/ 왜는 무슨 왜?/ 엄마 품에 잠자기 때문이지

-박목월 시인의 ‘이슬 아기들’ 전문



할머니는 갓난아이를 어르면서 “세상에서 제일 예쁜 꽃은 인꽃이다”라고 하시곤 했다. 사람이 꽃이라는 말을 그때는 잘 알지 못했다. 아기가 예쁘다고는 해도 꽃 중의 꽃이라는 말은 좀 과장이라고 생각되었다.



내가 할머니가 되고서야 아기가 꽃 중의 으뜸이라는 말을 알 수 있겠다. 막 태어나 배냇짓을 하는 아기는 우주의 기운으로 피워 올린 가장 예쁜 꽃이라는 것을. 하나님의 창조물 중 가장 아름다운 꽃이라는 것을.

손주를 본 게 처음은 아니다. 그런데도 이제 백일이 된 손자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생명에 대한 경외심이 몰려온다. 옹알이하느라 입을 오물거리는 아기의 입매는 달빛으로 잔물결이 반짝이는 호수 같고 어떤 감각에 반응을 나타내며 주먹을 쥐었다 펴는 모습은 능선을 따라 솟아오르는 아침 햇살처럼 상서로움으로 벅차다.

아기의 눈은 깊고 넓은 심연이다. 검고 그윽하다. 눈을 바라보노라면 그 그윽함 속에 빠져든다. 눈빛 너머에 아기만의 세계가 있을 것이다. 하나님 손에서 빚어지기 이전, 빛과 공기와 바람과 물의 직조로 형성된 세계는 한 생명의 미래를 형성해 가는 형질이 될 것이다.

새삼 혈육이라는 따뜻하고도 슬픈, 애틋하고도 처연한 관계 앞에 겸손해진다. 사람으로 빚어지기 전부터 아기와 내가 하나였다고 느껴지는 친숙함은 가슴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최고의 파동이다. 아주 오래된 신화처럼, 구근으로 남아 있다가 봄이면 절로 꽃대를 밀고 올라오는 히아신스처럼 스스로 충만해지는 나와 유사한 존재. 계보를 따져 본대도 다는 이해될 수 없는 신비로운 피의 흐름 앞에 마음 낮아질 수밖에 없다. 생명은 하나님의 영역이어서 감히 존재 여부를 물을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혈육이라는 이 대책 없는 끌림의 경험은 생명의 고귀함을 더 절실하게 깨닫는 마음을 갖게 하기도 한다. 사람이란 다 꽃으로 태어난, 꽃으로써의 대접과 보살핌을 받아 마땅한 귀한 자들이다. 사람 중 누구도 버려지고 배척당해도 좋을 자는 없을 터다.

태 안에서 수정된 태아는 참깨 씨만 하다가, 4주가 되면 사과 씨 정도의 크기가 되고, 5주가 되면 심장·위 등 장기가 형성되고, 7주가 되면 사람의 형태를 갖춘다고 한다. 태아의 성장 과정을 몰랐던 것도 아니고 생명의 탄생 역시 놀라운 일이지만, 우리 삶에서 다반사로 경험되는 일이므로 덤덤했었는데 손주를 본 계기로 하나님의 창조가 얼마나 섬세하고 아름다운 일인지 새삼스럽다. 아기에게 자석처럼 끌려가는 마음의 진행 또한 사람의 힘으로 되는 건 아닌 듯하다.

하루하루 커가는 아기의 모습을 보는 일은 기쁨이자 활력이다. 아이를 키우는 일의 수고로움이 만만치 않음을 잘 안다. 손주는 책임은 없고 바라보는 즐거움만 있어서 더 좋은 것이라고 말한다. 그럴 것이지만 할머니라는 이름을 갖고부터 할머니의 마음으로 사물의 이치를 돌아보는 계기를 갖게 된 건 더 없는 축복이다. 겨울을 견디고 올라오는 꽃눈들의 정수리가 아기의 주먹인 것 마냥 뿌듯하다. 감싸주고 보듬어 주어야 할 내 새끼들인 것처럼 대견하다.


조성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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