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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In] 김경준의 입, 무엇을 품었을까

정구현 / 사회부 부장
정구현 / 사회부 부장  

[LA중앙일보] 발행 2017/04/03 미주판 8면 기사입력 2017/04/02 12:27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참았던 시간만큼 말은 가빠지고 거칠어진다. 끝내 칼이 된 언어들이 노리는 건 내 입에 재갈을 물린 '누군가'다.

지난 29일 인천발 LA행 아시아나 항공기 OZ202편에 탄 그도 '말의 칼'을 품었다. 지난 10년의 수감생활은 그에게 '380억 원대 금융사기꾼'이라는 오명을 씌웠다.

돌아보면 그는 자타가 공인하던 수재였다. 아이비리그 코넬대를 거쳐 최고 명문 펜실베이니아대 와튼 스쿨에서 공부했다.

모건스탠리에 입사하면서는 '30대 투자 천재'로 불렸다. 1997년엔 한국에서 수십억 원의 연봉을 받고 살로먼스미스바니 증권사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2년 뒤 독립해 BBK라는 투자자문사를 세웠다. 그 알파벳 세 글자가 마치 낙인처럼 그에게 들러붙을 것이라고 그때는 상상하지 못했다.

그의 이름은 김경준이다. 2007년 'BBK 주가조작 사건'으로 기소됐다. 2001년 옵셔널벤처스라는 회사를 인수하면서 380억원의 회삿돈을 횡령한 뒤 미국으로 도피한 것이 그의 혐의였다. 그는 2009년 징역 8년형과 벌금 100억 원을 선고받았다. BBK 사건이 논란이 된 것은 주가조작 자체보다 연루된 '누군가' 때문이다. 김경준이 기소된 2007년 당시 한나라당 대선 후보로 나섰던 이명박(MB) 전 대통령이다.

BBK 사건은 투자금의 흐름이 다소 복잡해 설명하기 어렵다. 김경준의 주장대로 나열하자면 이렇다.

"…BBK의 실소유주는 MB다. BBK가 옵셔널벤처스를 인수할 당시 해외투자자로 언급된 'MAF 펀드'의 주주는 인터넷금융회사인 'LKe 뱅크'다. LKe 뱅크는 2000년 김경준과 MB가 각각 30억 원씩 투자해 만든 회사다. LKe 공동대표였던 MB가 주가조작을 몰랐을 리 없고, 따라서 MB 역시 관련되어 있다…"

주장은 상당히 설득력있는 공식을 근거로 한다. MB 스스로도 2000년 본지 인터뷰에서 BBK를 본인이 창업했다고 밝힌 바 있다.

사건을 수사한 검찰은 2008년 김경준의 단독범행으로 결론내렸다. MB가 횡령에 직접 관여했다는 증거가 없다고 했다. MB는 이미 대통령 당선인 신분인이었다. 그게 끝이었다. 그 후 수차례 'BBK 의혹'이 제기됐지만 그때마다 의혹은 진실이 되지 못했다.

그리고 10년 뒤 김경준은 만기출소했다. LA공항에 내린 그는 "1주일 이내에 밝히겠다"고 말했다. 본인에게 재갈을 물렸던 누군가를 향해 '말의 칼'을 꺼내겠다는 폭로의 예고였다.

이미 그는 그 칼을 여러차례 꺼냈다. 옥중에서 자서전 'BBK의 배신'을 쓰긴 했지만 배신한 누군가의 잘못을 제대로 밝히지 않았다. 글에서 스스로 "이 대통령이 권력을 잡고 있기 때문에 이 책에서 이야기 못한 부분들이 너무 많다"고 했다.

오히려 '폭로 예고' 보다 더 믿을 수 있었던 그의 말은 '날씨'였다. 가장 그리웠던 것을 묻는 질문에 '(LA의)날씨'라고 했다.

그럴리가. 그는 강제추방 전날 박범계 의원과 만나서 그리움의 대상을 사무치게 표현했다. 박 의원은 언론과 인터뷰에서 "김경준 대표가 아내와 딸, 누나에 대해 '1초가 그립다'고 굵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고 했다.

그가 날씨가 그리웠다고 한 건 1초가 그립다던 이들을 보호하려는 의도였을 터다. 취재진도 그의 가족을 만나고 싶어 그를 따라가야 했다. 그가 밀던 카트가 도로턱에 걸려 쓰러지면서 4개의 짐이 떨어졌고, 그걸 담으려 그는 땀을 뻘뻘 흘렸다. "따라 오지 마세요. 가족들이 못오잖아요."

드러낸 칼보다 숨긴 정이 더 신뢰가 간 순간이었다. 무엇을 어떻게 언제 공개할 지 알 수 없다. 그의 폭로가 '억울한 항변'으로 끝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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