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아름다운 우리말] 40년에 딱 두 번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

민족의 대 명절이라고 하는 추석이다. 추석은 한국인이 세계에서 가장 잘 지키는 명절이다. 영어로 'Korean Thanksgiving'으로 브랜드화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든다. 설날이 영어로 'Chinese New Year'라고 하는데, 충분히 브랜드 가치가 있을 만하다. 아무튼 추석은 온 가족이 모이는 한민족에게는 무척이나 소중한 날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나는 어머니, 아버지, 동생들과 추석을 보낸 건 1977년 이후에 딱 두 번 있었다. 1991년과 2008년 딱 두 번. 그간의 사정을 다 설명하기는 뭐해서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한다. 가족이란 게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어야 더 정이 쌓이는 법이지만, 사람 사는 게 만만한 일이 아니어서 1년에 한 번 만나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심리적인 거리가 문제인 경우도 있고, 물리적인 거리가 문제인 경우도 있고, 두 가지 거리가 모두 문제인 경우도 있다.

요즘에는 가족 간에 사이가 안 좋아서 안 모이는 경우도 있지만 예전에는 심리적인 거리보다는 물리적인 거리가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가족을 위해 먼 길을 떠난 아버지는 추석이 된다고 꼭 올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특히 해외 취업이라는 듣기에 따라서는 그럴싸해 보이는 일을 간 경우에는 물리적인 거리를 극복하기란 그야말로 불가능에 가까웠다.

가족이 세상을 떠나도 고국에 돌아올 수 없었다. 누군가가 돌아가셔도 시간이 지난 후에 소식을 듣고 술잔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던 시절이 있었다. 나의 아버지도 할머니의 임종과 장례를 지키지 못했다. '바다가 육지라면'이라는 노래가 유행할 수밖에 없던 현실이었다.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유학이나 이민을 간 경우도 저 바다가 없었다면 가슴 아픈 이별도 없었을 것이라고 애타는 노래를 부르고 또 불렀을 것이다. 저마다의 이별 사연이 한이 되었다.



이별의 장소는 연안 부두가 되고, 눈물의 공항이 됐다. 떠나가는 연락선을 바라보기도 하고, 날아가는 비행기를 바라보기도 했다. 예전의 공항에는 날아가는 비행기를 볼 수 있는 장소도 있었다. 보이지 않음에도 손을 흔들고, 손수건을 적시고 또 적셨다.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면 부두에서 공항에서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울기만 했을 것이다. 배와 비행기 안은 어땠을까? 흔들리는 배나 비행기를 느낄 새도 없이 주르륵 뺨 위로, 내 감정보다 먼저 흐르는 눈물을 닦지도 않고 떨구고 있었을 것이다. 절절히 아려오는 감정이다.

추석은 이산가족이 더 아픈 날이다. 남북의 이산가족뿐 아니라 우리의 역사 속에는 수많은 이산가족이 있다. 간도로 떠났던 사람들, 중앙아시아로 끌려갔던 사람들, 하와이로 갔던 사람들, 일본으로 갔던 사람들, 독일로 갔던 사람들, 베트남으로 갔던 사람들, 남미로 갔던 사람들 등등. 아픈 이별이 한이 된 민족이기도 하다. 한민족이 한이 많다고 한다면 그 이유는 아마 이별의 아픔 때문일 것이라 생각한다.

추석은 온 가족이 모이는 날이다. 그래서 더 외롭고, 우울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남진 선생의 '가슴 아프게'는 아버지의 18번이다. 오늘은 그 기억이 났다. 여기에 가사를 옮긴다. 당신과 나 사이에 저 바다가 없었다면 쓰라린 이별만은 없었을 것을. 해 저문 부두에서 떠나가는 연락선을 가슴 아프게 가슴 아프게 바라보지 않았으리. 갈매기도 내 마음같이 목메어 운다.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