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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TALK] 새로운 시대, 새로운 인물

김동민 / 뉴욕클래시컬플레이어스 음악감독

지난달 말 뉴욕 필하모닉의 시즌 오프닝 콘서트에 다녀왔다. 독일에는 469년을 맞은 오케스트라도 있지만 역사가 길지 않은 미국에서 176번째 시즌이라니 놀랍기 그지없다. 이번 시즌이 특별했던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2009년 이후 8년 동안 음악감독이었던 앨런 길버트가 뉴욕을 떠나고 얍 판 즈베덴이 새로운 '음악감독 지명자'의 타이틀로 뉴욕 필하모닉의 수장에 오르게 되는 첫 해이기 때문이다.

음악가였던 부친의 영향을 받아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한 얍 판 즈베덴은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미국의 저명한 바이올린 교수였던 도로시 딜레이와 공부하기 위해 줄리아드 음악원에 재학하던 시절, 당시 암스테르담 콘서트헤보우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이었던 베르나르드 하이팅크가 유럽 최고 명성의 오케스트라 악장으로 18세 소년을 영입하기 위해 뉴욕을 찾았던 일화는 유명하다.

지휘자로서, 바이올리니스트로서 정점에 있던 그에게 성공의 연속만 이어졌던 것은 아니다. 1996년 그가 악장으로 이끌던 오케스트라가 번스타인의 지휘로 베를린 투어 중 있었던 일이다. 당시 연주곡목은 말러 교향곡 1번이었는데 번스타인은 판 즈베덴에게 지휘봉을 건네고 멀리 객석으로 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는 당시 34세라는 젊은 나이었지만 이미 베테랑 리더였다. 악장으로 오케스트라를 이끌며 수 없이 연주했던 곡이었지만, 포디움에 올라 갑자기 지휘를 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바통을 든 오른손을 세차게 흔들기 시작하자 소리가 뿜어져 나왔다. 그렇게 15분 정도 시간이 흘렀다. 그는 얼굴을 들 수 없을 정도로 참담했다. 차라리 끝까지 거절했었어야 했다는 후회가 밀려들었다. 연주와 지휘는 전혀 다른 세계였는데… 객석에서 소리를 듣고 있던 번스타인이 다시 무대로 걸어나와 바통을 건네받았다. 그러나 뜻밖에 번스타인은 16년 차 악장에게 지휘를 공부해 볼 것을 권유했다. 엉망진창이라 생각했던 리허설이었는데 뭔가 특별한 것을 봤던 것일까? 1년쯤 지나 판 즈베덴은 모든 바이올리니스트들이 동경하던 암스테르담 콘서트헤보우 오케스트라의 악장직을 그만두고 지휘자가 되기로 결심한다. 세계적 명성의 악장으로 탄탄대로에 섰던 그가 무명의 지휘자라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선택을 감행한 것이다. 다시 시간은 흘렀고 유럽의 이름 없는 악단을 거쳐 10년 전 달라스 심포니 음악감독직에 취임한데 이어, 작년 초 뉴욕 필하모닉의 음악감독으로 선임됐다.



지난 9월 23일 그가 이끈 음악회에서 미국을 대표하는 미니멀 음악의 선두 주자 필립 글래스의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이 연주됐다. 뉴욕 토박이 글래스의 작품을 뉴욕 필하모닉이 처음으로 연주했다는 사실도 흥미로웠다. 이 작품은 LA 필하모닉, 파리 오케스트라 등을 포함한 5개 악단이 공동 위촉해 구스타보 두다멜이 LA에서 초연했다. 그 이후 유럽에서 이 곡을 지휘했던 판 즈베덴은 이 작품을 뉴욕 청중에게 처음으로 선보였다.

이날 공연에서 첫 지휘의 악몽을 안겨줬던 말러 교향곡 가운데 5번을 꺼내 들은 얍 즈베덴은, 인상적인 해석으로 뉴욕 필의 새로운 시대를 암시했다. 청중들의 반응은 열광적이었고, 작은 티는 옥의 아름다움을 해치지 않았다. 그는 11월에 같은 곡을 들고 뉴욕 필의 미시간 연주를 이끈다. 내년 2월 중순부터 3월 초까지 뉴욕에서 몇 번의 음악회를 더 가진 후, 악단과 함께 아시아 투어에 오른다. 판 즈베덴과 뉴욕 필하모닉이 함께하는 첫 여정이다. 그의 뉴욕 필하모닉 정식 음악감독 취임은 2018년부터 5년간 이어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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