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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마당] 삼 형제 술좌석

“오늘 엄마 생일이지요? 뭐 필요한 것 있어요?” “고마워. 가지고 싶은 것도 먹고 싶은 것도 없다. 너희가 말 잘 들어서 엄마는 하루하루가 생일이다. 그냥 네가 건강하게 잘 지내주는 것이 선물이야. 바이러스 물러가면 함께 밥 먹자.”

무소식이 희소식인 요즈음, 올해 들어 두 아들을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만나려고 했을 때는 이미 코로나19가 번지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한 번가량 아이들이 안부 전화만 한다. “엄마 괜찮아요? 뭐해요?” “바빠. 할 게 많아. 너는?” “동생하고 한국 드라마 봐요.” “드라마?” “엄마는 안 봐요?” 난 송혜교 나오는 ‘가을동화’와 ‘올인’을 본 이후로 한국 드라마 본 적 없다. 뭘 보는데? “마이 미스터(나의 아저씨)요.” “재미있니? 엄마는 뻔한 스토리에 울고 짜는 드라마 보기 싫어.” “이 건 좀 달라요.” “그래, 너희들은 어렵게 익힌 한국말 잊지 않도록 보는 것이 좋지.”

한국 드라마 하면 오래전 핼쑥하고 침울한 몰골로 일상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지인이 생각난다. 그는 와이프와의 갈등을 잊으려고 몇 달째 두문불출하며 드라마만 보고 있다고 했다. 방구석에 비디오테이프가 가득 쌓여 있던 어두운 장면이 잊히지 않는다.

나 또한 아이의 중국 친구가 ‘가을동화’ 보고 너무 재미있다고 해서 아이들에게 한국어도 가르칠 겸 빌려다 본적이 있다. 너무 울어서 머리가 빠개지도록 아팠다. ‘올인’ 드라마에는 너무 올인해서 밥맛을 잃고 볼이 움푹 패이고 생활이 엉망진창이 되었다. 남편은 섬뜩한 내 모습을 보고 “마누라 완전히 미쳤군. 그만 보고 가서 거울 좀 봐. 귀신 같아.”



그런데 아이들 말이라면 토 하나 빠트리지 않고 잘 듣는 나인지라 ‘나의 아저씨’는 보고 싶었다. 아이들이 왜 이 드라마가 다른 드라마와 다르다고 생각하며 좋아하는지? 알고 싶었다. 모두 16편이다. 아무리 아이가 재미있다고 해도 첫 편을 보고 싫으면 고만 봐야지 했다. 꽤 재미있다. 잠시간을 놓치고 꿈에서도 드라마 장면에 들어가 헤맬 정도로 생활 루틴이 깨지기 시작했다. 일단 시작했으니 빨리 끝장을 보고 싶었다. 그러나 끝으로 갈수록 쓸데없이 질척거리며 질질 끌어 흥미를 잃었다. 아이가 내준 숙제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보다가 마지막 두 편은 포기했다.

드라마 속 세 아저씨는 툭하면 흥분하고 격분해 소주잔을 부딪치며 자신들의 삶을 한탄한다. 도스트엡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삼 형제가 생각났다. 둘보다 셋이라야 더 흥겹고 술맛이 나는지? 나도 아들 하나 더 낳을 걸 그랬나?

브루클린 스튜디오에서 지내며 주말부부 된 남편은 가까이 있는 아이들과 이따금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친하게 잘 지낸다. 그냥 철없는 남편을 아들로 생각하고 삼 형제 두었다고 치자. 나 없이도 셋이 잘 노는 것을 보니 세상을 다 가진 듯 기분이 좋았다. 와인잔에 술을 가득 따라 혼자서 지는 해를 바라보며 ‘건배’.


이수임 / 화가·맨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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