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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나무 한그루 서있다

집 건너편 작은 언덕은 걷기에 참 좋은 곳이기도 하지만 풍경도 아름다워 저녁 노을을 담아 오기도 하고, 들꽃에 취해 걷다 보면 모두가 들꽃이 되어 시계의 초침을 멈추게 하는 곳이기도 하다.

노랑, 빨강, 보라, 핑크빛의 잔잔한 꽃들이 만발할 때는 만드신 이의 손길에 감탄이 절로 나오기도 한다. 올해도 몇 차례의 폭설과 찬바람이 불어온 후 다시 찾은 언덕길은 스산하기까지 할만큼 모든 것들이 사라져 있었다. 찬란했던 꽃들의 이야기들도, 단풍 진 잎들의 노래도 그곳엔 없었다. 단지 주인인양 언덕을 지키는 나무 한그루.

앙상한 가지를 드러낸 채 죽은 듯 살아있는 나무 한그루가 처연하게 느껴져 나무의 밑둥을 만지다 그 나무를 세우고 있는 뿌리를 생각해 보았다. 소란한 세상, 분주한 일상을 살다 보면 나를 잃어 버릴 때가 있고 너를 이해하지 못할 때가 있다.우리는 늘 보이는 것으로만 생각하고 평가하면서 살아가지 않는가? 그러나 보이는 것을 받혀주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보이지 않는 내면의 모습을, 그들의 이야기들을, 아픔을, 오래 견딤을, 그리움을 사유할 때, 비로소 나는 너의 얼굴이 되고 너는 나의 얼굴이 될 것이다. 서로 지탱하며 견디어낼 것이다.




나무 한그루 서있다

가벼워진 후
뼈와 살을 추려 간간히 입은
마른손을 하늘로 뻗는다
미풍에 속삭였던 잎들의 어휘
입안 가득 풀어낸 동그란 바람
그리고 견디어 냈던 푸른 생명들의 기억
짙은 민트향의 겨울로 간다
파이프 오르간의 물기 없는 파장
마른손을 힘겹게 하늘로 뻗는다

모두가 벗어버리고 있는 순간
강은 이제부터 봄을 향해 흐르고
옛 이야기도 먼 훗날의 이야기도 아닌
이 목마름을 채우기 위해
언덕 위 나무 한그루 서 있다
당신으로부터 시작돼 내게로 오는
낙엽 떨구는 사랑이 되랴
다가오는 그리움이 되랴
그저 흐르는 강물이 되랴

안다고 하는 것
울타리 너머의 상실한 마음
만든 이의 손길을 읽을 수 있다면
깊숙이 손잡음의 떨림이 있다면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지
그림자처럼 밟히는 나를 빚어내나니
마른손으로 춤추게 하나니
비로소 열리는 귀, 들리는 노래
힘줄선 근육 사이사이로
가을을 이별하는 사이 사이로
당신을 숨쉬는 사이 사이로

<시카고문인회장>


신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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