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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근 교수 문학칼럼: 존재론적 변신과 수필의 운명

이탈리아 현대 문명 비평가인 움베르토 에코는 “과학 기술에는 냉혹한 법칙이 있다. 부자들이 단독으로 사용할 때는 제대로 작동한다. 그러나 가난한 자들이 손을 대면 자동으로 멈춘다.”라고 말했다. 정보화 혁명의 열매가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분배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정보화 시대인 21세기엔 개인이 의지할 안정된 틀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21세기는 개인이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는 시대다. 정보의 바다를 능숙하게 항해해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를 정확하고 빠르게 수집해 이를 유익하게 이용하는 사람만이 돈도 벌고 출세도 한다. 이른바 정보화 사회의 귀족이나 새로운 지배층으로 부상하게 된다. 반면 정보를 장악하지 못하면 정보화 사회의 새로운 피지배 계층이 될 뿐이다. 여기서 변신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그것은 기존의 동일성에 고착되지 않고 다른 존재로 화化해가는 것, 존재론적인 변신이다.

수필의 운명도 같은 논리로 설명할 수 있다. 수필 창작에 대한 새로운 정보, 고급문학으로서의 새롭게 변신한 수필이론에 대한 지식을 얻지 못하고, 구태의연한 잡기를 쓰는 방식으로, 또는 여기를 적는다는 식으로 수필을 써서는 문학가 중에서도 비주류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새롭게 다가오는 시대정신이나 대중의 욕구에 교통하면서 변화된 수필장르의 이론모형을 수용해서 고급문학으로서의 수필 정체성을 계승 발전시키는 데 동참하지 않으면 같은 수필가로 명함을 내밀기 힘들어질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명심할 것은 들뢰즈가 말한 대로 긍정적인 힘의 의지를 믿고 욕망을 자기화해야 한다는 점이다. 구미를 잃은 입은 들뢰즈 식으로 해석하면 이미 입이 아닌 것이다. 작가 역시 작품을 써야겠다는 적극적인 욕망을 일구어내지 못하면 이미 작가가 아닌 것이다.

자기의 존재 목적을 상실한 문학은 반드시 그보다 힘이 센 타 장르에 흡수되거나 그 존재가치를 상실함으로써 전통과 정체성을 잃고 만다. 이런 차원에서 수필가는 고급문학으로서 당대인들의 예술 철학적 욕구를 반영시킬 수 있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찾아야 할 것이다. 존재론적이란 말은 여기서 실제적이란 말이다. 현대사상은 실재적인 것, 상상적인 것, 상징적인 것이라는 세 개념으로 둘러싸고 진행되었다. 시대정신과 역사의식을 반영하지 못하는 문학 장르나, 새로운 시대의 철학적 이념을 소화시키지 못하는 문학 장르는 결국 살아남지 못한 채 소멸될 것은 자명한 이치다. 상상적인 되기, 상징적인 되기 수준으로는 한계가 따른다. 환상성과 유토피아적 이상성을 본질로 갖고 있던 중세의 화려한 로맨스가 사실주의 시대를 맞아 죽음을 고한 것은 바로 그런 모델이 되고도 남는다.

엘리엇의 말처럼, 과거의 과거성에 대한 인식과 과거의 현재성에 대한 인식을 동시에 추구하면서 한 발 더 나아가, 다가올 미래 정신에 대한 인식과 과거의 현재성에 대한 인식을 동시에 추구하면서 한 발 더 나아가, 다가올 미래 정신에 대한 인식까지 내포하는 힘을 지닐 때, 수필의 미래는 고대 서사시나 중세 로맨스의 전철을 밟지 않고 새로운 전통의 길을 개척하게 될 것이다. 수필가는 위에서 제기한 바와 같이 문학의 위기에서 자신의 창작의지에 힘을 싣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하고 사라지고 만다는 것에서 변신의 필요성을 느낄 수 있다. 생산적 수필가로서 문학의 중심에 우뚝 설 수필가가 되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 수필문단이 당면하고 있는 과제는 진정한 수필가다운 자세와 의식의 부재다. 타장르에 비해 문학적 가치가 폄하되고 있는 현실에서 수필가의 자세와 의식을 논의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된다. 이 문제는 곧 수필의 오랜 정통과 정체성을 유지 발전시키면서 장르 차원에서의 자기 변혁을 위한 모색의 길과도 연결된다. 진정한 수필가는 수필가 집단의 공감대 속에서 형성되는 게 바람직하다. 한 개인의 노력에 의해 수필계 전체를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이다. 들뢰즈의 리좀 논리학은 ‘접속’의 논리학이다. 그것은 관계의 생성을 논한다. 관계의 그물이 고착화될 때 관계망이 실체의 역할을 대체한다. 관계 자체가 생성할 때 본질주의가 극복된다. 리좀은 다양한 접속을 통해서 관계가 생성해가는 장이다. 리좀의 세계는 개체들이 일정한 동일성으로 고착되지 않고 계속 생성하는 관계들을 통해서 변해가는 세계이다.

따라서 고급문학으로서의 수필에 대한 인식을 갖춘 수필가들의 왕성한 창작활동과 이를 따르지 못하는 작품들에 대한 비평가들의 날카로운 비판, 수필 전문 이론가들의 이론적 체계화 작업 등이 상호보완적으로 진행될 때, 즉 이들의 관계가 생성될 때, 수필이 바로 설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어떤 사상이든 외부의 적이 있고, 내부의 적이 있다. 내부의 적이 외부의 적보다 더 무섭다. 우리 수필의 현재는 어떠한가. 저급수필의 영향으로 우리 수필이 점차 흔들리고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정보화시대의 수필가로 당당하게 명함을 내밀기 위해서는 수필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 21세기 사회에 있어서는 수필에 관한 지식만이 의미 있는 자원이다. 창작 배경으로서의 지식은 앞으로 수필창작의 본질이 될 것이다. 문학의 위기에서 살아남으려면 스스로 수필에 대해 공부하는, 수필의 새로운 작법적 지식에 접근해야 한다. 그리고 정서적인 면과 함께 지성에 바탕을 둔 작품이 창작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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