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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오디세이]60세 앞두고 대학 졸업장 받은 안용호 전 세탁협회장

“나이는 숫자일뿐…좋아한다면 하세요”
지난 1월 조지워싱턴대 예술사 전공 졸업
내친김에 조지타운대학원 예술사 입학도

안용호 전 세탁협회장이 지난 1월 조지워싱턴대학에서 학사 학위를 받았다. 2013년 노바에서 공부를 시작했고, 조지 워싱턴대로 편입한 후 5년만에 받은 학위다. 아들 뻘 되는 학생들과 물리 화학 수학 등 교양과목을 듣고 이어 유럽 미술, 인도 미술 등 전공과목을 이수하고 받은 예술사(Art History) 정식 학위다. 60을 코 앞에 두고 대학을 졸업하는 안용호씨는 “인문학 전공이다 보니 읽고 쓰는 과제물들이 너무 많아 중도에 포기할 생각도 많았지만, 지켜보는 와이프와 딸들 생각에 끝까지 공부를 마칠 수 있었다”며 “미국 대학에서의 공부 경험은 평생 남을 소중한 추억이 됐다”고 말했다.

안회장의 정식 교육은 고등하교 중퇴가 마지막이었다. 1976년 16세 사춘기 때 시작한 미국 생활은 고통스런 나날이었다. 고등학교 재학시절 밤마다 부모가 운영하는 DC 빈민지역 세븐일레븐에서 캐시어로 일해야 했다. 당시 사춘기였던 그에게 비추어진 미국은 고통스럽고 적응하기 어려운 곳이었다. 그는 미군에 입대하면 미국 시민권과 대학 교육비을 지원한다는 말을 듣고,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77년 미육군 보병으로 입대했다. 미군에 복무하면서 메릴랜드 대학교에서 ESL을 이수하고, 제대후에는 검정고시(GED)를 거쳐 81년에 NOVA에 입학했지만 새로운 가족들이 생기면서 대학 교육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이후 다양한 사업과 직장을 전전하던 그는 80년대 중반부터 DC에서 세탁소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세탁소 비즈니스는 성공가도를 달렸고 현재는 DC에만 5개의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고 백악관과 미 의회가 그의 고객들이다.

다시 그가 노바 애난데일 캠퍼스를 찿은 것은 지난 2013년. 고등학교를 중퇴한 지 35년만이다. 그가 다시 대학문을 두드릴 수 있었던 것은 미술분야에 대한 열정이 생겨난 것과 부인의 강력한 권유 때문이었다.

안 회장은 “비즈니스를 운영하며 바쁘게 살아 가면서 미술에 관심을 갖게 됐고, 이 관심은 예술에 관한 역사로 옮겨갔다. 일상과는 동떨어진 분야임에도 미술관이나 박물관이 나에게는 최고의 쉼터였다. 그런 내 모습을 관찰하던 아내가 이제 사업도 안정적이고 하니 한번 제대로 공부해 보라고 권유했다.”고 말했다.



그는 “와이프는 지속적으로 내게 동기부여를 해 주었다. 나 또한 언젠가는 다시 대학을 가야하는데 하는 막연한 생각이 머리속에 항상 있었지만, 하루 하루가 전쟁터 같은 세탁소 공장과 종업원 관리 그리고 손님들에 치이다보면 어떻게 세월이 흐르는 지도 모르게 한 해가 하루 지나가듯 지나갔다.”고 말했다.

비즈니스로 너무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던 시절, 그는 무작정 파리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늦가을 파리 거리을 방황하다가, 우연히 로뎅 박물관을 들어가게 됐다. 야외 전시장으로 나가니 ‘버지스 오브 케리스’ 동상이 한 눈에 들어왔다. 뒤엉키고, 뒷틀린 군웅들, 깊이 흐르는 침묵, 손목과 발목에 채워진 무거운 쇠사슬. 그들의 고통이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여 전해져 왔다. 그 때 그는 “동상 앞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같이 서서 고난의 한 발자국을 내딛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 때의 경험이 유익했고 그의 인생에 새로운 교훈을 주었으며, 더 나아가, 예술의 중요성 그리고 필요성을 일깨워, 예술사를 전공하게 된 모티브가 되었다고 했다.

2013년 노바에서의 첫 해는 힘들었다. 그는 “수학, 영어, 화학 같은 기초교양과목이 너무 어려웠다. 배움 그 자체도 힘들었지만 새로운 환경이 너무나 생소해서 마치 이국에 와 있는 느낌이었다. 칠판은 사라지고 모든 교육이 브랙보드와 컴퓨터 그리고 인터넷으로 이루어지고 있어서 내가 얼마나 멀리 뒤쳐져 있는 지를 실감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NOVA에서 좋은 성적을 유지해야 4년제 대학으로 편입이 되므로 그는 열심히 공부했다. 다음해 그는 조지 워싱턴대로 편입할 수 있었고 또 새로운 차원의 전쟁이 시작됐다. 인문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은 모든 시험이 에세이 필기 시험이며 읽고 써 내야하는 것이 부지기수로 많았다. 따라서 읽고 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학생이라면 인문학 특히 예술 역사학은 권하고 싶지 않다.

그가 조지 워싱턴으로 편입한 것은 조지 워싱턴 대학대의 인문학대학인 컬럼비아 리버럴 아츠 대학은 자체 박물관도 둘이나 운영하고 있고, 유명한 예술대학 이었던 코코런 갤러리 대학이 조지 워싱턴 대학으로 통합돼었고, 지척에 있는 스미소니안과 내셔날 아트 갤러리와의 코넥션이 역시 마음에 들어서였다.

미국은 아직도 노력하는 이들에게 많은 가능성을 제공하고 있다. 노바에서의 교육이 좋은 밑바탕이 되어주었고 만학이란 어려운 상황을 좀더 부드럽게 무마해 주었던 것 같다. 특히 커뮤니티칼리지에서는 나이든 사람들이 간혹 수업시간에 보이기도 했다. 따라서, 외로움이 조금은 덜했는데 조지워싱턴 대학은 그야말로 나이든 사람은 혼자였다.

그는 “커뮤니티칼리지 교육비는 사립대학과는 비교도 안될만큼 저렴한 가격인데도 교육수준은 높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따라서 만학의 꿈을 가진 한인이라면 커뮤니티칼리지에서 시작하면 좋다고 권하고 싶다. 커뮤니티칼리지라고 학점을 쉽게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금물이다. 커뮤니티칼리지에서 받은 학점들을 (60 학점까지) 4년제 대학에서 모두 인정 해준다는 의미는 그 만큼 동등한 수준의 교육을 보장한다는 의미다.”라고 말했다.

조지워싱턴 대학에서의 첫 여름방학 때는 그리스에서 고전 역사학을 공부한 것과 두번째 해 여름방학 동안에 쿠바의 하바나 대학에서 수업을 받으면서 유적지들을 찿아 헤매던 것이 좋은 추억으로 남는다. 그는 Magna Cum Laude이라는 우등학생으로 졸업을 하게 되어 자긍심도 생겼다고 했다.

그는 또 “조지 타운 대학 석사 과정도 입학하게 되었고 추천서를 써 주신 두 교수님에게 무한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특히 19세기 프랑스 미술학 라빈슨 교수님과 인도 미술학 교수님 그리고 수많은 시간을 보냈던 24시간 운영돼는 도서관 직원들에게도 감사하며, 컴퍼스 주위 한인 상점과 우동과 포를 제공하는 셀턴홀 식당 주인도 고마운 분들로 떠오른다.”고 회상했다.

그에게 있어서 부인과 딸들의 지지가 가장 고마운 부분이며 또한 공부을 할 수 있게끔 도와준 세탁소 식구들에게도 감사를 표했다.
그는 “나이가 들어서 공부한다는 것은 신체적 건강도 받쳐주어야 가능하다”며 “눈이 침침해서 책을 못 읽고, 허리와 엉덩이가 아프고 결려서 자주 일어나 서성이기도 수 없이 반복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교육의 가장 근본은 역시 인성교육이다. 나 스스로를 절제하며 달래고, 모르는 것을 배우며, 새로운 것들을 받아들이며, 깨우치면서 인간은 자신을 발견하게 되고 더욱 겸손해 지는 것 아닌가. 좋아하던 술도 끊고, TV와 SNS도 모두 차단하고 공부에만 열중했던 시절이었다. 청소년 시기에 교육의 기회을 놓쳤거나 무슨 이유에서든 나이가 들어 다시 학업을 하시고 싶으신 분들이 있다고 한다면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때’는 바로 지금이란 점을 강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진민재 기자 chin.minjai@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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