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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미국에도 반상회가 있다

골목 맞은편 끝 집이 한참을 수리하더니 새 주인을 맞았다. 새로 이사 온 백인 부부는 길을 오가며 만나는 사람마다 반갑게 인사하며 살갑게 다가섰다. 그렇게 몇 달 동안 얼굴을 익히더니 이 부부가 동네 사람들에게 반상회를 하자며 몇 날 몇 시에 자신의 집으로 오라는 초대장을 보냈다.

첫 반상회에는 선약이 있어 참석 못 하는 대신 대학 입학을 기다리는 아들을 보냈다. 반상회 어땠냐는 물음에 아들은 좋았단다. '미국에서 반상회는 무슨 반상회, 그러다 말겠지. 아들이 대신 얼굴 한 번 비쳤으니 됐지 뭐' 그렇게 생각하며 잊고 있었는데 두 번째 반상회를 한단다.

가기 싫었다. 가뜩이나 할 일도 많은데 반상회까지 가는 게 부담되었다. 반상회에 가면 뻘쭘하게 앉아 있다가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억지로라도 웃음을 띤 채 자리를 지켜야 할 것 아닌가. 아내에게 혼자 다녀오라고 하니 가장인 내가 같이 가야지 혼자서는 못 간다고 야단이다. 딸에게 물었다. "아빠 반상회에 안 가도 되겠지?" 당연히 가지 말고 집에 같이 있자고 할 줄 알았는데, 딸은 오히려 동네 주민으로서 그런 자리에는 꼭 가야 한단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반상회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한 스무 걸음쯤 떼었을까. 아내가 슬쩍 말을 흘린다. "우리 가지 말까?" 아내도 가기 싫었던 게다. 잘됐다 싶어 아내 마음 바뀌기 전에 얼른 발걸음을 돌렸다. 가벼운 마음으로 집에 들어서는데 이번에도 딸이 문제다. 왜 돌아왔냐며 성화를 부리는 통에 신발도 벗지 못한 채 등 떠밀려 반상회에 참석했다.



이번 반상회의 주제는 '재난 대비'란다. 시에서 재난대비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 두 명이 나와서 재난 대처 요령에 대해서 자세히, 그것도 너무도 자세하게 한 시간 이상 설명하는 것을 들어야 했다. 나중에는 설명한 것을 잘 이해했는지 시험도 봤다. 시험 후에는 간단한 다과와 함께 교제하는 시간도 가졌다.

이사 온 지 3년이 지났지만, 한두 집 빼고는 이웃에 누가 사는지도 몰랐는데, 이번 반상회를 통해 여러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앞집에 사는 부부는 내가 살았던 하와이에서 왔다고 해서 반가웠고. 그 옆에 사는 일본인 노부부는 같은 교단에 속한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반가웠다. 그날 모인 집에는 우리 딸과 같은 학교에 다니는 쌍둥이 딸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30년을 한 곳에 살고 있다는 한국 분과도 처음으로 인사를 나누었다.

반상회를 소집했던 백인 부부의 정성 어린 배웅을 받으며 반상회를 마쳤다. 어둡던 골목길이 나올 때 보니 밝아졌다.

바쁘다는 핑계로 주변에 누가 사는지 둘러볼 여유도 없이 살았다. 반상회는 아니더라도 이웃에 누가 사는지 정도는 아는 것이 좋지 않을까? 세상은 해가 떠야 환해지겠지만 사람 마음이야 옆 사람의 얼굴에서 나오는 빛으로도 얼마든지 밝아질 수 있을 것이다. 집 앞 골목길에 들어서면서 두리번거린다. 반상회에서 만난 이웃을 보면 내가 먼저 손이라도 흔들어야지.


이창민 / 목사·LA연합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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